지난 금요일 오전, 방송 때문에 일찍 집을 나서기 전이었다. 무심하게 켜놓은 TV에서 뉴스를 통해 마이클 잭슨의 죽음이 타전됐다. 엥? 이건 또 왠 아침부터 아닌 밤에 홍두깨 같은 소리? 루머가 아니었다. 맙소사, 그래. 마이클 잭슨이 죽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손이 덜덜 떨리고 눈물이 흘렀다, 는 훼이크고. 그냥 그대로 집을 나서서 무덤덤하게 길을 걸었다. 이상한 아침이었다. 그냥 이 세상의 한 시대가 끝나는 기분이었다.
코가 무너지네, 얼굴이 뭉개지네. 성형수술 부작용으로 괴물이 됐다. 더 이상 ‘King of Pop’이 아닌 ‘Wacky Jacko’라 불린 마이클 잭슨은 엄연히 퇴물이었다. 왕년의 명성은 비웃음을 위한 먹거리나 다름없었다. 몰락한 스타에게 돌을 던지는 건 월드컵 응원 수준이었다. 왕년에 ‘문워커’ 좀 췄다는 형들도 어쩌면 그 대열에 참가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 와중에 그를 변호하는 팬들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비웃는 사람의 수가 절대적으로 많았다. 전세계를 주름 잡던 팝의 제왕의 인생 말년은 망신살의 연속이었다. 성형 부작용 때문에 얼굴이 일그러진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고, 아동 성추행으로 구설수에 오르고 또 손가락질 당했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양산에 장갑까지 끼고 종래엔 마스크까지 하며 돌아다니는 그를 사람들은 흉측하다고 비웃었다. 세계적인 갑부였다던 마이클 잭슨은 남루해진 명예만큼 가난하고 초라한 빚쟁이에 불과했다. 세상이 그를 멸시했다. 그래, 솔직해지자. 나도 그 멸시의 일부였다. 그랬다.
‘Thriller’앨범 발매 25주년 기념 재발매 한정판인 홀로그램 앨범을 샀을 때, 문득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 앨범이 참 놀라운 결과물이었다는 것. 25년이 지난 앨범이지만 현대의 어떤 것과 비교해도 결코 떨어지는 물건이 아니라는 것. 마이클 잭슨은 아티스트였다. 그는 매력적인 퍼포먼스로 관객의 마음을 홀렸지만 그 이전에 걸출한 뮤지션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의 빈자리가 그 빈자리 뒤에 남은 것들을 보게 만든다. 비웃고 손가락질했던 횟수만큼이나 그 빈자리의 무게를 체감하게 된다. 마이클 잭슨이 남긴 건 음악이었다. 춤이었다. 무대였다. 7월 달에 재개한다던 월드 투어도, 새로 발매한다던 신보도 한낱 꿈이 됐다. 무대에 서야 할, 노래를 불러야 할, 그가 죽었다. 마이클 잭슨이 죽었다. 무대는, 노래는 끝났다.
사실 마이클 잭슨을 얼마나 좋아했는지에 대해서 열변을 토할 자격은 없다. 딱히 없어서 못살겠다 싶은 심정도 아니고, 살아생전 그의 모든 것을 사랑했노라 변호할 수 있는 취향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새삼스럽게 마이클 잭슨의 빈자리에 한 마디를 남기는 건, 그가 참 대단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여고괴담>의 그 유명한 점프컷마냥 후두부를 강타해버린 탓이다. 잃어버린 ‘History’ 앨범이 다시 마음을 후벼 판다. 고등학교 시절 춤을 추며 문워커를 연습했던 기억이 주마등을 스친다. 그러고 보니 그 시절, 마이클 잭슨은 알게 모르게 내 삶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다시는 볼 수 없다. 볼 수 없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와 동시대를 살았다는 게 새삼 놀랍다. 이젠 전설이 됐다. 죽고 나서야 전설이었음을 깨닫는다. 참 미련하고도 애석한 일이야. 그렇지? 마이클 잭슨의 무너진 코를 비웃던 이들은 아마 한 세기를 버티지 못하고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마이클 잭슨은 지구가 멸망하기 전까지 사라지지 않을 거다. 그게 바로 그와 우리의 차이다. 우리가 못났다는 게 아니라 마이클 잭슨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걸, 이젠 알겠다. 너무 늦게 알았을까. 우리는, 아니, 나는 당신에게 생각보다 많은 걸 받았더군.
잘 가요. 그리고 고마워요. 또 미안했어요. Rest in Peace, Never Ending MJ.
사진 제공: 소니 BM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