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유산을 처분하고 서울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형국(임형국)과 영애(양은용) 부부. 사업도 번창하고 남부럽지 않은 아파트에 살면서 그들은 행복을 만끽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형국의 딸 미애(류현빈)를 친손녀처럼 아끼는 장로 부부의 노모가 죽은 후 미애는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 점점 기울어져 가는 사업과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는 가정 때문에 형국은 점점 자신이 꿈꾸던 행복과 멀어져 간다.
김태곤 감독의 <독>은 자신이 집필한 중편소설 ‘독안의 노인’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작년 13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첫 선을 보인 후 공포와 더불어 현실적 문제를 다루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먼저 영화 속 배경이 되는 도시와 아파트란 공간은 관객에게 독(pot)속에 갇힌 심리적 압박감을 준다. 형국에게 도시는 성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하는 곳일 뿐이다. 억지로 교회에 다니거나 사업을 위해 친분을 쌓는 그의 모습에서 관객은 불안함을 엿보고, 덜컹거리는 엘리베이터와 녹물만 나오는 수도, 자주 꺼지는 전등 등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일들을 통해 점점 두려움도 느낀다. 이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도시와 아파트는 주인공과 보는 이들에게 공포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더불어 <독>은 종교에 대한 현대인들의 잘못된 시각을 소재로 삼는다. 그들이 생각하는 종교는 순수한 믿음의 의미가 아닌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형국 가족도 더 나은 행복을 위해 교회에 다닌다. 하지만 잘못된 믿음으로 시작된 그들의 종교는 구원의 손길은커녕 사업 실패와 가정불화 등 현실적 문제를 안겨준다. 그러나 자신들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자 다시 종교에 의지한다. 감독은 종교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통해 인간의 나약함이 불러일으키는 무서움을 드러낸다.
귀신이나 살인마의 등장 없이 공포를 흩뿌리는 <독>은 배우들의 연기 비중이 클 수밖에 없다. <팔월의 일요일들>에 이어 두 번째 호흡을 맞추는 임형국과 양은용은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광기를 보여주며 영화의 완성도를 높인다. 형국의 딸 미애역의 류현빈이 선보이는 섬뜩한 눈빛연기와 장로역으로 나온 길해연의 광신도 연기도 관객을 공포의 독안으로 빠뜨리기에 충분하다.
영화는 결과적으로 물질만능주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극중 인물들은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죄를 짓는다. 회사의 부도를 막기 위해 형국의 돈을 빼돌린 고향 선배, 사람의 생사보다 믿음을 중시하는 장로 부부, 그리고 더 나은 삶을 위해 소중한 것을 버리고 서울로 상경한 형국. 감독은 행복을 좇다 그들 스스로 어둠의 독안에 갇히는 장면들을 보여주며 탐욕에 눈이 먼 현대인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글_ 김한규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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