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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안내! 매카시 원작 영화의 안타까운 숙명
더 로드 | 2010년 1월 5일 화요일 | 하정민 이메일


알 수 없는 이유로 순식간에 불타버린 세상. 잿더미 속에서 살아남은 남자와 아이는 추위를 피해 남쪽으로 이동한다. 그들은 부서진 도로와 죽은 나무의 숲, 폐허가 된 휴양지를 통과하며 남쪽으로 향한다. 여정 도중 어둠과 추위뿐 아니라 종종 식인마가 된 다른 생존자들의 위협을 받기도 한다.

이는 꼭 영화 탓만이 아니다. 존 힐코트 감독의 역량이 크게 부족해서도 비고 모텐슨의 연기내공이 얕아서도 아니다. (모텐슨은 언제나처럼 <더 로드>에서도 관객의 망막과 가슴에 깊이 새겨질만한 연기와 눈빛을 선보인다) 지상 최후의 풍경에 대한 프로덕션 디자인의 세공미가 모자랐던 것도 아니다. 회색빛의 망가진 도시 풍경이나 거대한 화염이 하늘까지 뒤덮는 광경은 여느 재난 블록버스터의 그것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영화는 소설이 묘사한 남자와 아이의 여정을 우직할 정도로 충실히 옮겨놓는다. 동선과 사건, 대사 한 마디까지도 소설과 고스란히 포개진다. “최대한 원작에 충실하려 했다”는, 2007년 퓰리처상 수상작의 메가폰을 쥔 힐코트 감독의 포부는 빈말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더 로드>는 소설이 품은 감동의 진폭을 그대로 옮겨오지 못한다. 애초에 코맥 매카시의 소설 <더 로드>는 영화화하기에 부적합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더 로드>는 코엔 형제의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미국 의 작가 코맥 매카시의 열 번째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지구 멸망 이후를 그린 이 소설은 영화화하기 힘들다는 매카시의 소설들 중에서도 가장 난감한 소설 중 하나로 꼽혔다. 소설은 모든 파멸이 끝난 후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세상에서 살아남은 두 부자(父子)의 뒤를 쫓을 뿐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소설은 어둠 속에서 길을 걷는 남자와 아이의 단순한 행위를 반복해서 묘사한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저주받은 생을 이어가는 다른 생존자들에 의해 위기의 순간을 맞기도 하지만 매카시는 그들이 아니더라도 이미 죽음 앞에 놓인 부자의 삶을 극적으로 가공하지 않는다. 잔혹하게 훼손된 아기 시체와 식인종이 돼버린 사람들과 관련된 에피소드에 할애하는 지면은 극히 적다. 대재앙의 원인은 소설 마지막까지도 나오지 않는다. 그런 추상적인 이야기와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소설 <더 로드>는 초유의 재난에 대한 현실감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생생한 작품이다. 극도의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소설이 할리우드 제작자들을 사로잡은 이유도 그 때문이리라.

영화 <더 로드>는 소설로부터 받은 그 감동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으려 하는 제작진의 고민과 노고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앞서 말한 대로 고지식할 정도로 부자의 행보를 원작 그대로 옮기려 한 점이나 CG에만 의존하지 않고 원작 속 세기말의 풍경과 가장 근접한 장소를 현실에서 찾아 담으려 한 점이 그렇다. 소설에서 짧게 나오는 몇 안 되는 사건을 확대해 서사를 만들고 감동의 원천을 부성애에서 찾으려한 것은 할리우드 자본으로 만들어지는 영화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힐코트 감독과 제작진의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인다.

영화 <더 로드>가 원작의 깊이에 도달할 수 없었던 가장 근원적인 요인은 간단하다. 스크린에 옮겨진 멸망의 언어가 매카시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난폭한 세계로 들어가기보다 한 발 물러서 관조하는 매카시 문체의 간결함과 시적 운율에는 그 거리감에도 불구하고 냉소보다는 연민과 비통함이 묻어난다. 매카시 소설의 세계가 참혹한 만큼 서정성을 띄고 있는 까닭이다. 그래서 매카시의 소설을 접하는 것은 단순히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공감각적인 체험이 된다. 자신만의 논리와 감각으로 보편적인 인류사를 끄집어내는 매카시의 언어는 아무리 진화한 테크놀로지로도 시각화할 수 없는 깊이와 진동을 담고 있다.

하나마나한 말이지만, 만약 매카시의 소설 <더 로드>가 없었다면 영화 <더 로드>는 올해의 영화 중 한편으로 꼽을 수 있는 수작이 됐을 지도 모른다. 멸망의 과정을 생략하며 기존의 이야기 구성을 뒤엎는 대담함, 특수효과를 덜어내면서 창조한 세기말의 실감나는 스펙터클 그리고 한 아버지와 아들의 개인사를 통해 전파하는 전체 인류사 등 영화는 볼거리와 주제의식, 감동을 두루 갖추고 있다. 하지만 문체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매카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숙명처럼 범작에 머문다.

2010년 1월 5일 화요일 | 글_하정민(무비스트)




-<2012> 보다 실감나는 세기말의 풍경
-매카시의 이름을 빼고 보면 최근 개봉한 재난 영화들 중 수작
-원작보다 무난한 이야기와 감동이 대중영화로서의 장점이 될 수도.
-<폭력의 역사>나 <이스턴 프라미스>로 받았어야하지만, 지금이라도 아카데미는 비고 모텐슨에게 오스카를 안겨라.
-코맥 매카시의 소설을 온전히 영화로 옮기는 일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코엔 형제는 자신들만의 언어로 옮기는데 성공했다. 그 점이 매카시의 포스만큼이나 <더 로드> 제작진을 압박하는 큰 이유일터.
-할리우드 공정을 거치니 진지한 묵시록이 신파가 됐네?
-과감한 각색을 했다면 좀 더 나았을까?
28 )
norea23

꼭볼꺼예요ㅋㅋ기대됨   
2010-01-06 12:57
monica1383
이런 게 바로 영화다   
2010-01-06 09:21
gaeddorai
좀 지루해보임   
2010-01-06 01:29
mooncos
영상이 너무 어두워서 졸릴것같아요   
2010-01-06 00:50
nada356
의미있는 재앙영화.   
2010-01-05 20:51
ehgmlrj
저두.. 너무 기대되요!! ㅎ   
2010-01-05 20:21
wnsdl3
기대되네요~   
2010-01-05 18:14
jhee65
보고싶네요   
2010-01-05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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