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제차를 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부녀자들을 납치, 유린하고 잔인하게 살해한 범인들. 이 사건을 맡은 강력반 형사 정수(감우성)는 사람을 죽이고도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그들을 보고 분노를 느낀다. 이들에게서 도망쳐 나온 유일한 생존자 지현(이승민)은 정신적 충격으로 모든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정수는 그녀에게 연민을 느끼며 끝까지 지켜준다는 약속과 함께 결혼을 한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지현은 쉽게 씻을 수 없는 충격에 휩싸이고 아이를 임신한 채 정수의 곁을 떠난다. 7년 후, 지현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받은 정수는 약속장소로 급히 달려간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는 건 아무 이유 없이 두 사내에게 살해 당한 그녀와 딸의 시체. 엎친데 덮친 격으로 두 사내는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게 되고 정수는 자신만의 복수를 계획한다.
화성 연쇄 살인사건부터 부산 여중생 살인사건까지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잔인한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살해의 이유조차 불분명한 범인들의 진술은 자연스럽게 두려움과 분노를 느끼게 한다. <무법자>는 실제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실제 사건을 기초로 이야기를 구성했다. 살인을 하고도 두려움 조차 없는 범인, 법의 심판으로 그들에게 처벌을 내릴 수 밖에 없는 현실은 정수를 괴롭게 만든다. 그들에게 빼앗긴 가정, 삶의 행복은 이제 그에게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꿈이 되어 버렸다. 곁에서 그의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소영(장신영)의 노력이 엿보이지만 세상은 그를, 그는 세상을 버린다. 이처럼 영화는 정수를 통해 잔인한 사건과 더불어 그 일을 마주하는 사람들의 고통까지 보여준다.
<무법자>는 7년 이란 세월을 기준으로 묻지마 살인사건과 이태원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펼친다. 영화 속에서 7년 전 묻지마 사건은 잔혹한 살해 장면의 이미지를 부각시켜 공포와 고통을 체감하게 한다. 이어서 7년 후 미국 국적인 두 사내가 화장실에서 정수의 아내와 딸을 죽이는 장면은 실제 1997년에 발생한 이태원 살인사건을 연상시키며 잊었던 분노를 일깨운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이 두 사건을 통해 법의 심판이 아닌 한 개인의 심판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무법자>는 작위적인 이야기로 관객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실제 사건의 극악무도함을 부각시키고, 법의 심판으로도 채 가시지 않은 사건의 분노를 대신 해소시킨다. 그러나 주인공 정수가 이 두 사건을 겪고, 아파하며 끝내 복수를 한다는 설정은 현실과 동떨어져 보인다. 극영화의 특성상 주인공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측면을 간과할 수는 없지만 슬픔과 고통의 감정의 극한까지 치닫게 만드는 감독의 연출은 아쉬움을 남긴다. 이로 인해 감우성의 분노에 찬 연기는 쉽게 와닿지 않는다.
그 외에도 <무법자>는 90여 분 동안 두 개의 단편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며 일관성 없이 흘러간다. 감독이 초반 고통과 공포의 분위기를 만들면서 정수의 감정 연기를 원동력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갔다면, 후반부는 요즘 미드식의 빠른 편집과 화면 분할을 통해 정수의 복수를 다루고 있다. 도시 한 복판에서 쇠사슬과 폭탄으로 자행되는 공개 재판의 이야기 구성은 참신하다. 그러나 처음과 전혀 다른 영상과 이야기 구성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정의 맥을 딱 끊어 놓는다. 게다가 플래쉬 백의 남용, 의문의 사고로 죽은 정수의 대학 동창, 공개 재판에서 얼떨결에 참여하게 된 시민 등 불필요한 장면이 삽입되면서 영화의 재미를 반감시킨다. 결국 영화는 실제 사건을 소재로 사용하며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키지만 중심이 흔들리는 스토리와 연출력은 관객을 분노하게 만든다.
2010년 3월 15일 월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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