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시골마을에서 난리가 났다. 마을 사람들의 건강을 책임지던 유일한 의사 이노(쇼후쿠테이 츠루베)가 사라진 것. 주민들의 신고로 현장에 출동한 형사는 도쿄에서 발령을 받고 온 인턴 의사 소마(에이타)를 비롯해서 이노의 주변에 있던 이들을 탐문하며 그의 행방을 수사하던 중, 의문스런 단서들을 발견하게 되고 그 실마리를 따라가며 점차 놀랄만한 진실을 찾아내게 된다.
<유레루>를 연출했던 니시카와 미와의 신작 <우리 의사 선생님>은 감춰진 진실을 드러내는 사연이란 점에서 두 작품의 공통분모를 짚게 만들지만 좀 더 세밀하게 살펴보자면 관계라는 구조의 균열을 야기시키고 그 현상 속에 놓인 인물들의 태도를 관찰한다는 점에서 보다 뚜렷한 교점을 찍어내는 작품이다. 두터운 우애를 지니고 있던 형제의 파국이 단말마처럼 찾아왔듯이 두터운 신의를 얻고 있던 의사에 대한 실망도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의심조차 필요하지 않았던 관계의 표정에 감춰진 진의나 진실이 드러날 때, 이를 깨닫게 된 이들의 마음 속에는 파문이 인다. 그리고 관계는 흔들리거나 절단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무덤덤하게 묻혀진다.
물론 <우리 의사 선생님>은 <유레루>와 판이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유레루>가 비극적 구도에 가까운 인물들의 진중한 심리극이라면 <우리 의사 선생님>은 한결 여유롭고 때론 코미디에 가까운 희극적 뉘앙스를 드러내는 드라마다. 시골마을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은 때때로 소동극에 가까운 코미디의 양식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 중간중간에서 얻어지는 경험적 성찰들과 직접적인 대사를 배제한 채 인물의 표정만으로 드러내는 심리적 묘사가 보다 유의미한 깊이를 우려낸다.
영화에서 주요한 비밀이라 할 수 있는 진실은 사실 영화의 핵심이 아니다. 영화는 많은 러닝타임을 뒤에 두고도 이른 순간에 그 진실의 정체를 관객 앞에 드러낸다. 중요한 건 되레 그 진실의 전후에 따른 사람들의 변화에 있다. 결과적으로 <우리 의사 선생님>은 거짓말에 관한 영화이되, 그 거짓말을 선악의 기준 안에서 명확하게 가로지르는 영화가 아니다. 거짓말을 했던 이노가 처음부터 선의를 품고 있었던 것이 아니란 사실을 제 입으로 말한다거나, 그의 거짓말을 알고도 그 사실에 대해서 딱히 배신감을 느끼지 않는 마을 사람들의 태도는 결과적으로 사실보다도 중요한 것이 진심에 있음을 느끼게 만든다. 수많은 진짜가 가짜보다도 못한 시대에서 진짜 행세를 하는 가짜가 되레 진짜보다도 나은 감상을 부를 때, 과연 진위의 판별은 중요한 것인가.
<우리 의사 선생님>은 풋내기 인턴 의사의 성장담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그 끝에 다다라서는 풋풋한 멜로이기도 하고, 결과적으로는 소소한 웃음을 곁들인 깊이 있는 드라마다. 소박한 일본 시골 마을의 아담한 정서 속에서 벌어지는 해프닝과 같은 사연은 때때로 순진한 웃음을 자아내지만, 결국 그 끝에서 모종의 성찰을 품게 만든다. 착해빠진 사람들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눈으로 판별하는 진짜보다도 마음으로 느끼는 진짜는 어디서나 통하는 법이다. 대부분의 믿음은 그럴 듯한 설득력에서 오지만, 그보다 한 차원 높은 믿음은 진짜 믿고 싶은 것에서 비롯된다. 그럴 때 우린 ‘진심이 통했다’고 말한다. <우리 의사 선생님>은 바로 그 진심에 대해서, 진짜를 위장한 가짜의 시대에서, 가짜라지만 진짜보다 진짜 같은 진심에 대해서 말한다. 진실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진심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마음을 녹인다.
무엇보다도 정의 구현과 국민의 생리를 위해 부여한, 법집행에 대한 권위를, 국가행정에 대한 권위를, 제 성욕과 물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우리 검사 선생님’과 ‘우리 국회의원 선생님’들의 저질스러운 활약에 더 이상 기대할 것도 없다고 말하는 당신에게 <우리 의사 선생님>은 큰 위안이 될만한 진심을 전하며 진짜를 갈망하게 만든다.
2010년 4월 23일 금요일 | 글_민용준 beyond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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