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前) 영국 총리 아담 랭(피어스 브로스넌)의 회고록을 대필하던 작가가 익사채로 발견된다. 경찰은 작가의 죽음을 자살로 판명하고 사건을 마무리 한다. 그의 후임으로 회고록을 맡게 된 유령작가(이완 맥그리거)는 랭이 있는 미국의 섬으로 간다. 마침 임기 중 랭이 테러리스트 용의자를 미국 CIA에 불법으로 넘겨주었다는 스캔들이 터지고, 사건의 배후에 두 나라간의 모종의 거래가 있었음을 직감한 유령작가는 전임자의 죽음에도 음모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유령작가>는 굉장히 클래식하고, 보수적이면서 장르적 문법에 충실한 영화다. 새로운 테크닉도, (요즘 유행하는)그 흔한 장르의 형식 파괴도 없다. 대신 영화는 인간의 의심과 불안한 심리에서 공포감을 끌어올리고, 사건을 촘촘하게 엮어 관객들의 조바심을 낚는다. 탁월한 심리 묘사로 서스펜스를 제공한 히치콕이 연상되는 순간이다. 아날로그적인 방법이 현란한 CG보다 더 신선할 수 있음을 영화는 역설한다.
사운드의 사용도 깔끔하다. 여기에서 사운드라는 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배경음악이나 효과음보다 광범위하다. 영화는 단순한 파도 소리만으로, 자동차에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만으로, 방문 밖으로 조그맣게 들리는 발걸음 소리만으로도 긴장감을 습자지처럼 빨아들인다. 여기에서 언어로는 쉽게 정의 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묘한 분위기들이 자란다. 느릿느릿한 호흡 속에서도 지루함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한정된 시간과 한정된 공간을 리듬감 있게 분할하고 효율적으로 쪼개낸 연출의 힘이다.
<유령작가>는 영화 외적인 이유로도 상당히 흥미로운 작품이다. 일단 아담 랭. 원작 소설이 출간됐을 때부터 언론은 랭이 영국의 전 총리인 토니 블레어를 모델로 했다고 추측했다. 친미 정책에서부터 이라크 관련 자료 조작 사건 등이 토니 블레어의 행적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원작 소설가는 “NO!”라며 선을 그었지만, 폴란스키의 생각은 다른듯 하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미국 장교를 실재 전 국무부장관이었던 콘돌리자 라이스를 빼다 박은 배우를 ‘굳이’ 캐스팅 한 걸 보면 말이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폴란스키가 날리는 이 의미심장한 유머는 ‘미필적 고의’의 냄새가 짙다.
섬에 갇혀 밖으로 빠져 나갈 수 없는 극 중 유령작가의 처지가 현재 가택 연금중인 폴란스키의 신세와 비슷한 것도 재미있는 부분이다. 1977년 미성년자 모델 성폭행 혐의로 재판 중 도망, 유럽에서 도피생활을 하던 폴란스키는 지난해 취리히영화제 공로상 수상을 위해 입국하던 중 체포된 바 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영화는 최근 각종 음모론으로 시끄러운 우리에게도 논란의 여지를 던진다. 북한, 천안함, 미국과 한국의 공조, 의문으로 남은 (빌어먹을)1번인지 1호인지… 다행히(?) 이 영화는 우리의 영진위가 아닌, 베를린으로 갔기에, ‘빵점’ 대신 (베를린국제영화제)감독상을 받았다.
2010년 5월 31일 월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