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뷰티>를 좀 똑똑한 사람과 함께 봤다. 그 영화를 보고 난 "콩가루 집안의 백미를 형상화 한 작품"이라 했고 그사람은 "미국 중산층의 페이소스와 에토스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보여지는 개인의 붕괴를 가족이라는 시스템을 차용해....(어려워서 기억이 잘 안난다)" 뭐, 그런 말을 하면서 끝에 필자를 보며 "공부좀 하고 생각도 좀 하고 살라"고 했다. 가시는 걸음걸음마다 무식이 똠방똠방 떨어지는 내 영화평 수준을 탄로나게 했던 작품, <아메리칸 뷰티>의 도라 버치가 돌아왔다. <던전 드래곤>에서 아무런 열정도, 연기에 대한 카리스마도 없어 '역시 공주는 나탈리 포트만이야!'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도라 버치가 칼을 갈고 다시 나온 듯 했다. "자, 여기 칼 있으마" 하면서.
초대받은 4명, 18일간의 실종, 돌아온 자는 도라 버치 한 명 뿐. 영화는 그들이 갇혀있었던 지하벙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영국 최고의 사립학교에 다니는 리즈는 인기 록가수의 아들 마이크를 짝사랑 하지만 마이크는 평범한 리즈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여기서 하나의 혼란스러운 문제가 주어진다. 과연 리즈는 평범한 학생인가 날라리 고딩인가.
무서운 10대는 동서양 구분이 없고 '땡땡이'는 예나 지금이나 학생들 최고의 축제가 아닌가 싶다. 땡땡이로부터 시작된 비극은 짝사랑이 집착으로, 집착이 소유욕으로 변해가는 과정에 '공포감'을 얹어 우리에게 조금은 틀린 영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쉽게 접했던 한국형 전설의 고향식 공포영화나 미국형 악마 영화, 사이코 살인마 영화와는 다르다. 영화를 보고 새삼 느낀다. 인간의 공포는 어쩌면 절망과 맞닿아 있는지도 모른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