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전직 검사보 벤야민 에스포지토(리카도 다린)는 그 날의 사건을 잊을 수 없다. 25년 전, 동료 검사보가 떠맡긴 강간살해 현장의 그 처참했던 순간을. 미해결 사건으로 창고 속에 덮어버렸지만, 그의 머리 속에서는 여전히 강렬한 편린으로 남아 있다. 그는 소설로 집필하기로 마음 먹고 상사였던 이레네(솔레다드 빌라밀) 검사를 찾아간다. 여전히 아름다운 그녀를 보며 1974년, 당시를 회상하기 시작한다.
<엘 시크레토: 비밀의 눈동자>는 성공적인 장르혼용영화다. 멜로와 범죄스릴러를 양날의 검처럼 절묘하게 사용하고 불과 얼음 같은 온도 차를 교차시키는 것이 영화의 묘미다. <애수>의 한 장면 같은 기차 경적이 울리는 플랫폼, 막 출발하려는 듯 뿜어대는 하얀 연기,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달려오는 여인 등 몇 가지 이미지들로 강렬한 멜로를 풍기며 시작한 영화는 이 분위기를 배반하듯 충격적인 살해 현장을 눈 앞에 들이민다. 가학적인 시체를 보여주면서 범죄스릴러로 회전한 후 멜로로 속을 꽉 채워 넣는다 식이다. 그리고 이 멜로드라마는 두 가지 사랑을 축으로 톱니바퀴를 돌린다. 25년 전 살해 사건으로 아내를 잃은 남자 모랄레스(파블로 라고)와 계급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이레네를 보내는 벤야민 두 사람의 사랑이다.
극명히 다른 장르를 오가는 것이 영화의 첫 번째 특질이라면, 두 번째는 캐릭터다. 영화의 중요 참고인 4명의 인물은 1974년과 2000년을 사이에 두고 시간을 넘나든다. 두 시간대를 넘나드는 교차 편집은 배우들의 연기와 이미지를 충돌시키면서 시각적 재미를 충족시킨다. 물론 이 범죄드라마의 시발점이자 종착역은 사랑이다. 강렬한 캐릭터 드라마는 주인공들의 지고지순한 사랑과 스릴러적인 쾌감의 촉매가 된다. 강렬한 멜로가 한 가지 단면만 비추지 않고, 표면을 깎아내는 순간 욕망, 연민, 호기심, 광기 등 결코 단순하지 않은 속내가 드러나게 된다. 이 복잡다단한 감정이 멜로•범죄스릴러를 완성시킨다.
영화의 제목이 시사하듯 ‘눈동자’라는 이미지는 많은 함의를 담고 있다. 이레네를 향한 벤야민의 열망의 눈동자, 연민의 눈동자, 수치와 욕정으로 가득한 범인의 눈동자, 시간 속에 갇혀 사는 모랄레스의 회색 눈동자 등. 그 중에서도 시선을 통해 주인공 벤야민이 자신과 살인자의 욕망을 동일화시켜 수사하는 과정이 흥미롭게 다뤄진다. 여기에 아르헨티나의 정치적 상황은 범죄드라마의 적절한 풍경이 된다.
영화는 마지막까지 두 가지 장르 모두에 방점을 찍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한다. 범죄 스릴러로서 일종의 반전을 연상시키는 봉합은 말끔하고 적잖이 충격을 주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멜로도 같은 수치로 가져가려는 욕심은 그 반전의 강타가 아니었다면 도식적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씨 인사이드> <타인의 삶> <굿’바이> 등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최근 수상작들과 함께 줄 세워 보자면, 중위권에 랭킹 시킬 수 있을 만큼의 재미와 감흥이다.
2010년 11월 8일 월요일 | 글_프리랜서 양현주(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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