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멕시코의 작은 마을에 한 소녀와 늙은 남자가 이사를 온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소년 오웬(코디 스밋-맥피)은 놀이터에서 혼자 놀다가 새로 이사 온 소녀 애비(클로이 모레츠)의 묘한 매력에 끌린다. 하지만 애비의 등장 이후 마을에는 의문의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뱀파이어인 애비가 살기 위해 피를 구하러 다녔던 것이다. 애비와 함께 온 남자는 애비의 아빠가 아닌 연인으로 애비에게 피를 구해다주다가 사고를 당해 자살을 택한다. 애비의 정체를 알게 된 오웬은 애비를 도와주고 애비 역시 오웬을 괴롭히는 학교 아이들로부터 오웬을 지켜준다. 결국 오웬은 애비의 곁에서 죽은 늙은 남자의 역할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렛미인>은 뱀파이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하지만 기존의 뱀파이어 영화들처럼 낭만적이거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내지 않는다. 그렇다고 최근에 나온 <트와일라잇>처럼 말랑말랑하지도 않다. <렛미인>은 슬픈 동화이면서 처절한 생존 이야기인 동시에 잔혹한 로맨스다.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장르적으로 풀어내면서도 소년 소녀의 사랑과 캐릭터에 대한 다른 해석으로 관심을 끈다. 이 작품이 1934년 창립된 공포, 스릴러 영화 전문 제작사인 햄머 필름의 작품이라는 점은 그래서 더 주목할 부분이다. 정통적인 방법으로서의 장르영화와 그의 변형까지 모두 시도할 최적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리메이크는 아니라고 해도 먼전 만들어진 스웨덴 영화 <렛미인>과의 비교는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전작이 두 소년 소녀의 가슴 아프고 순수한 사랑에 초점을 맞추면서 미장센에 비중을 뒀다면, 미국판 <렛미인>은 이에 비해 장르적인 특성을 잘 살리고 있다. 여기에 캐릭터 자체의 성격과 감각적인 영상으로 시선을 끈다. 특히 전체 미장센을 보여주는 방식보다 클로즈업으로 사물을 집중감 있게 표현한 영상은 캐릭터와 주변을 격리하는 방식으로 소년 소녀의 고립감을 상징한다.
<렛미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캐릭터의 매력이다. 전작의 소녀 뱀파이어 이엘리를 연기한 리나 레안데르손이 순진무구한 소녀 같은 느낌이 강했다면 애비를 맡은 클로이 모레츠는 팜므파탈적인 느낌이 강하다. 애비와 오웬의 순수한 사랑보다는 오웬에게 결정을 강요하는 악녀로서의 뉘앙스를 배제하기 어렵다. 이는 캐릭터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클로이 모레츠라는 배우의 영향력 때문이다. 또래보다 성숙해 보이는 이미지에 어떠한 연기도 능숙하게 해내는 클로이 모레츠는 원작의 애비를 자신만의 것으로 새롭게 만들어버렸다.
소설에서 출발한 <렛미인>은 확실히 기존의 뱀파이어 영화들과는 그 궤를 달리 한다. 사람을 죽여 피를 빨아 먹어야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뱀파이어라는 근본적인 설정은 같지만, 행위 자체보다 이들이 처한 상황이 주가 되고, 소외된 사람들에 시선을 맞춤으로서 장르적인 관습에 발목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애비와 오웬이라는 캐릭터에 집중할 수 있다. 뱀파이어와 사람이지만 같은 처지의 두 사람은 그런 이유로 서로를 보듬는다.
2010년 11월 12일 금요일 | 글_김도형 기자(무비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