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로맨틱 코미디의 관건은 주인공, 특히 여자 주인공의 캐릭터 설정에 있는 듯 하다. 아직 허락되는 영화가 많지 않았던 중학교 시절, 익숙하지 않은 극장으로 내 발걸음을 거두었던 것은 담벼락에서 맑게 빛나던 맥라이언의 미소였으니. 스크린 가득 그녀의 놀라는 눈망울에 (같은 여자임에도 불구) 가슴이 덜컥거렸고, 그런 날이면 집에 돌아와 거울 앞에서 한참이나 입을 이죽대며 그녀의 사랑스러운 표정을 따라하곤 했다. 그러나, 맥라이언의 망발(?) 사건을 계기로 그녀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져 갔고, 더욱이 그녀의 차기작들이며 타 여배우의 로맨틱 코미디들이 적이 실망스러운 터, '이제 나도 사랑의 환상이 사그라지는 나이에 도달했구나.' 새삼 세월을 한탄하며 갸우뚱대고 있었는데.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훔쳐보고 나의 새로운 이상형(?)이 등극하였으니. 오, 사랑스러운 르네 젤위거. 누구든 어떻게 그녀를 사랑하지 않고 배길 수 있으리오.
쏟아지는 햇살마저 미끄러질 듯 찰랑거리는 금발 머리에 호수처럼 신비한 파란 눈동자. 브리짓 존스를 연기한 르네 젤위거는 외모부터 '먹고' 들어간다. 금발에 파란 눈을 지닌 백인 여성은 예로부터 백치미의 상징이 아니었던가. 게다가 통통하게 살이 오른 볼(사실 뚱뚱함으로 설정된)에 감도는 홍조, 살풋 피어나는 그녀의 천진난만한 미소는 봄바람처럼 관객의 마음을 살랑살랑 흔든다. 이런 외모 덕에, 그리고 능청스런 연기 덕에 천방지축으로 스크린을 누비는 르네 젤위거에게 관객은 마치 아기를 바라보듯(브리짓 존스는 32세의 노처녀임에도 불구하고!) 다사로운 눈길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페미니스트 입장에서는 펄쩍 뛸 노릇이겠지만.
그녀가 브리짓 존스를 맡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상상하기가 까마득할 정도로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르네 젤위거의, 르네 젤위거를 위한 영화이다. <툼레이더>가 안젤리나 졸리의 영화이듯 말이다. 그녀의 매력이 달콤하게 녹아든 이 영화, 아무래도 르네 젤위거로 꼼꼼히 포장한 팬시 상품같다. (실제로 <브리짓 존스의 일기> 다이어리 세트도 시판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상술이 불쾌하지는 않다. 뭐, 꼭 필요하지는 않아도 갖고 있으면 행복한 미소가 전염되는 예쁜 캐릭터 상품이기에.
뱀발: 주로 순둥이 역할을 도맡던 건실한 청년 휴 그랜트의 비열한 연기 변신도 볼 수 있음. 낄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