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옥탑방, 동거, 짠순이. 장안의 화제가 된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가 방영된 지, 8년이 지났는데, ‘가난한 사랑 노래’는 여전히 이 시대를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반값 등록금 실현은 갈 길이 멀고, 엥겔지수는 높아져만 가고, 저축해 봤자 이자는 쥐꼬리에, 인건비를 줄이려는 기업들의 ‘꼼수 채용’만 늘어가고 있으니, 88만원 세대들이 기댈 곳이 어디 있나. 결국 제 몸 챙기는 건, 자기 뿐. 돈에 사로잡혀 아득바득 살아가는 홍실은 이 시대가 낳은 트라우마로 돈에 대한 관념마저 상실한 지웅은 그런 시대가 잉태한 돌연변이처럼 보이는 이유다.
<티끌모아 로맨스>가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사뭇 진지하다. 홍실이 지웅에게 전수하는 ‘허리띠 졸라매는 기술’들. 예컨대 골동품 수집을 위한 폐가 투어, 결혼식 하객 아르바이트, 연예인 위조 사인 판매, 재활용 봉투기 쓰레기 구겨 넣기 등의 기술이 ‘재미’가 아닌, ‘정보’로 다가오는 것은 분명 특기할만한 일이다. 특히 빡빡한 현실에 못 이겨 한강으로 뛰어든 홍실과 지웅에게 위로대신 앰뷸런스 출동비 청구비를 들이미는 씬은 애처롭다 못해 잔인하기까지 해서, 가슴이 서늘해진다. 판타지에 힘을 싣는 여타의 로맨틱 코미디에 달리, 현실에 착지해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우직함이 돋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본인의 임무를 크게 잊고 있는 건 아니다. 88만원 세대의 아픔이 전반에 흐르고는 있지만, 종국에 그것은 ‘사랑은 돈을 초월한다’는 이데올로기적 결말을 위한 도구로 치환된다. 지웅이 홍실을 위해 준비하는 마지막 선물도, 로맨틱 코미디의 결말에 정확히 부합한다. 누군가에게는 88만원 짜리 명품 구두보다 사치스럽거나 혹은 비현실적인 선물로 비춰질 수 있지만, 낭만을 잃어버린 세대들에게 일말의 희망을 열어둔다.
결론적으로 <티끌모아 로맨스>는 말랑말랑한 판타지 설정이 기대보다 낮고, 현실 묘사의 강도는 기대이상으로 강한. 그러니까 달콤하긴 하지만 그보다 씁쓸한 잔향이 더 오래 남는 영화다. 그것이 티켓 판매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덕분에 영화는 자신만의 자의식을 획득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2011년 11월 10일 목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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