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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렬의 영화컬럼
봄날은 간다 : 강요 당한 아름다움 | 2001년 10월 4일 목요일 | 정성렬 이메일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또한 사랑의 계절이다. 이맘때쯤 종로의 거리는 연인들로 넘쳐나기 마련이다. 어떤 애정표현을 해도 과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만 같은 요란한 네온사인과 젊은 열기가 사랑에 빠지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만든다.

그렇지만 종로 한가운데 위치한 파고다 공원은 외로운 영혼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고독을 곱씹는 곳이다. 명절이 찾아와도 누구 하나 기뻐하지 않는 쓸쓸한 노인들과 삶에 지친 가장들의 어깨가 늘어져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어슬렁대는 사람들은 대부분 혼자다. 항상 열려있다지만, 파고다 공원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으로 붐비는 곳이다.

문득 "봄날은 간다"의 노래구절이 떠오른다.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이번 추석연휴 동안 가장 화제가 되었을 법한 허진호 감독의 신작 '봄날은 간다'는 그 옛날 백설희 여사가 불렀던 동명의 노래를 스크린으로 옮긴 제법 잘 만들어진 영화이다. 이미 전작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놀라운 관찰력과 일상성을 선보이며 평단의 지지를 받았던 허진호 감독은 3년 동안 고심하며 이 작품을 준비했다고 한다.

마치 화려한 종로 한가운데 위치한 파고다 공원의 느낌처럼 영화는 쓸쓸한 느낌의 사랑이야기를 허진호식 화법으로 풀어나간 이번 작품은 이영애와 유지태가 지금껏 어떤 영화에서도 보여주지 못했던 놀라운 연기로 관객들의 가슴을 일렁이게 만든다. 한번쯤 사랑이란 것을 해 보았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한편의 절제된 시(詩)와 같은 느낌의 영화. 바로 '봄날의 간다'가 그런 영화이다.

만약 이 영화가 허진호 감독표가 아니라 이름 없는 무명 감독의 작품이라면 지금과 같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까 생각이 든다. 물론 어느정도 주목은 받았겠지만 지금처럼 모 주간지에 특집기사로 다루어지고, 인터넷 영화사이트 마다 이 영화를 메인 화면에 거는 등의 화제는 불러일으키지 못했으리라. 영화도 영화이지만 허진호라는 네임파워가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새삼 다시 확인되어진다.

아마도 허진호 감독 또한 어느 정도 이 같은 언론의 반응을 예상했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무척이나 '만들어진 듯'한 아름다움으로 가득 메워졌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눈부시게 빨간 목도리를 감고 등장하는 이영애의 성격은 검은 코트와 함께 일순간에 대변되며 그들이 소리를 채집하기 위해 찾아다니는 장소는 그들의 앞날이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에 대해 하나하나 복선을 깔고 있다. 단적인 예로 기울어진 대숲이나, 사람의 발길이 드문 산사, 굽이쳐 흐르는 냇물 등은 그들의 관계가 삐딱하게 흐를 것을 암시한다.

파크리트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란 책을 읽어본 적이 있는가. '깊이가 없다'라는 평론가의 한마디에 삶을 송두리째 날려버린 화가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다. 허진호 감독은 전작 '8월의 크리스마스'의 성공으로 인해 '절제된 아름다움'과 '과감한 생략' 그리고 '일상의 사랑 이야기'등에 스스로 잠식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런 특징들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많은 이들이 좋기만 한 영화처럼 이야기하는데, 실제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가슴으로 전했던 감성적인 울림이 '봄날은 간다'에서는 머리의 굴림으로 변했다고 느낀 것이 과연 필자만의 오판일까? 전작의 강요를 이기지 못한 감독은 전작에서 한 걸음 나아가기보다는 오히려 퇴보한 듯 하다.

영화인들은 자신들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그런 것처럼 보여지곤 한다. 스릴러에 대한 집요함이 '세이 예스'같은 어설픔을 빚어냈고, 대박에의 갈망이 '조폭 마누라'같은 이류 홍콩영화수준의 저질 오락영화를 만들어 냈으며 블록버스터에 대한 강박관념이 '무사'같은 비실비실한 공룡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지금 한국영화는 시장점유율 50%라는 목표에 집착하며 어떻게든 그 목표달성을 위해 비상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양질의 한국영화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언론의 밀어주기와 더불어 관객들의 한국영화 사랑이 뒷받침되면서 할리우드 영화들이 한국영화 화제작들을 피해 다녀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러한 호전적인 상황이 얼마나 오래갈 것인가 하는 물음에는 딱히 명확한 대답을 이끌어 낼 수가 없다. 다만 지금과 같은 한국영화의 호황으로 미루어볼 땐 아시아 시장뿐 아니라 유럽과 미주지역까지 전 세계에 두루두루 한국영화가 시장을 개척할 수도 있으리란 장미빛 기대만이 들 뿐이다.

요는 이렇다. 이 자리에 주저앉아 정체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서처럼 깨어지는 아픔을 통해서만 새로운 세계로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명제일 것이다. 발전을 위한 거듭나기는 전도연 최민식 같이 최고의 배우로 뽑힌 이들 뿐만 아니라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함께 해야할 숙제가 아닐까 한다. 고인 물은 썩는다. 항아리에 담긴 고인 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항아리를 깨어 고인 물을 흐르게 할 때 진정한 한국영화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으리라.

7 )
kpop20
봄날은 간다 보고싶어요   
2007-05-25 22:49
soaring2
봄날은 간다..잔잔한 감동이 있는 작품이었죠   
2005-02-13 21:13
moomsh
못보신분들 꼭보셈 ㅋㅋ   
2005-02-07 23:33
moomsh
무튼 이영화 재밌었다는 ㅋㅋㅋ   
2005-02-07 23:32
moomsh
유지태도 멋지고 ㅎㅎ   
2005-02-07 23:32
moomsh
이영애 너무 예뻐;;;   
2005-02-07 23:32
cko27
참. 저 때 두사람 연기 너무좋았는데.^^ 훈훈한 느낌.   
2005-02-07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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