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매니저 케이트(사라 제시카 파커)는 바쁘다. 두 아이 키우랴, 남편 내조하랴, 회사에서 인정받으랴. 아슬아슬한 이중생활을 이어가던 케이트의 삶은 그녀가 글로벌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서 균형이 깨진다. 어린 딸은 출장만 다니는 엄마에게 불만이 많다. 남편은 가정에 소홀해지는 아내가 못미덥다. 가정에서 잡음이 심해질수록, 회사 일은 승승장구다. 게다가 매력 넘치는 클라이언트 잭(피어스 브로스넌)의 유혹까지. 일생일대의 기회가 일생일대의 위기가 된다.
<하이힐을 신고 달리는 여자>의 케이트는 흡사 <섹스 앤 더 시티 2> 속 네 여자의 미래 같다. 아이들에 치여 자기를 잃어버린 샬롯, 남편과의 로맨스가 사라지는 게 두려운 캐리, 가정 때문에 직장에서 밀려나는 게 두려운 미란다, 사랑 앞에서든 일 앞에서든 자신을 잃고 싶지 않은 사만다. 그녀들의 고민을 모두 합치면, 케이트의 현실이 된다. <하이힐을 신고 달리는 여자>와 <섹스 앤 더 시티> 사이의 교집합은 이 뿐 아니다. 케이트의 주변 인물을 인터뷰 형식으로 조명한 건, <섹스 앤 더 시티>가 초기에 사용했던 문법과 고스란히 겹친다. 케이트의 욕망을 자유롭게 하는 장소가 뉴욕이라는 건, 너무나 빤한 설정이다. 캐리가 누군가. 칙릿을 사랑하는 2030 여성들 사이에선 ‘자유의 여신상’ 못지않게 뉴욕을 상징하는 캐릭터로 자리 잡고 있고 있는 인물이다.
<섹스 앤 더 시티>가 아른거리는 게 나쁜 거냐고? 물론 아니다. 다만 그것이 지닌 감수성에 깊게 다가서지 못하고, 표면에 머문 게 아쉬울 뿐이다. 영화는 <섹스 앤 더 시티>만큼 화끈하거나 진보적이지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처럼 짜릿하지도, 그렇다고 영화 제목처럼 톡톡 튀지도 않는다. 무미건조한 일상을 마법처럼 변화시키는 진취적인 드라마나, 워킹맘의 애환을 밀도 있게 그려낸 생활밀착형 영화를 기대하면 곤란하다. 자아 성취와 가족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던 여인의 이야기는 아쉽게도 틀에 박힌 관점에서 풀려나가고, 너무나 술술 해피엔딩을 향해 달린다. 소설 지문에 존재했을 주인공의 무수히 많은 내적 고민들은 스크린으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증발되고 말았다. 그리고 또 하나. 워킹맘을 소재로 한 영화와 드라마는 이제 너무 많지 않나. 단순히 소재에만 머무르는 영화는 오히려 촌스러워 보인다. ‘운동화를 신고 달리는 워킹맘’이 오히려 더 섹시해 보일 수 있다는 걸, 감독은 정녕 모르는가.
2012년 1월 30일 월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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