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살 먹도록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해본 소설가 구주월(하정우). 하늘이 도우셨는지, 우연히 참석한 영화제 파티에서 이상형 희진(공효진)을 만난다. 그녀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을 거듭한 주월은 마침내 희진과 연인이 된다. 주월은 자신과 식성이나 생활방식이 다른 희진을 사랑의 힘으로 극복한다. 그녀의 겨드랑이 털까지 사랑하게 된 그는 ‘액모(腋毛)부인’이라는 소설을 연재하며,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주월은 희진의 과거를 아는 사람을 만나 그녀의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된다. 그날 이후부터 주월의 마음속에는 믿음이 아닌 의심이 가득 차고, 과거에 집착한다. 그리고 이별의 종착역으로 달려간다.
<러브픽션>은 어떤 계기를 통해 사랑에 빠지고, 무엇 때문에 소원하게 됐는지, 그리고 왜 이들이 이별 할 수밖에 없는지를 시간 순서대로 나열한다. 감독은 이 과정을 통해 연애에 대한 생각을 곱씹게 만든다. 영화에서 이별의 근원이 되는 건 의심이다. 주월의 연애 경력이 증명하듯이 여자를 글로 배운 남자다. 여자의 과거에 집착하고, 자신이 몇 번째 남자인지 궁금해 한다. 의심이 산처럼 불어나면서 희진과의 관계에 균열이 생긴 주월은 그동안 써왔던 소설을 ‘Del’키로 삭제하듯이 희진과의 사랑도 자신의 삶속에서 삭제해버린다. 그리고 뒤늦게 자신의 행동에 대해 후회한다.
<러브픽션>은 다양한 형식을 삽입해 주월과 희진의 연애를 흥미롭게 구성한다. 그 중 하나가 액자식 구성이다. 영화는 희진과 만난 후부터 주월이 집필하는 소설 ‘액모부인’을 액자식 구성으로 보여준다. 희진의 겨털을 보고 ‘액모부인’으로 제목을 정할 정도로, 소설은 주월의 내면을 들춰보는 거울이다. 희진의 비밀을 알게 된 주월은 소설을 통해 심경의 변화를 보여준다. 여기에 <다찌마와 리> 식의 대사 톤이 재미를 더한다. 두 배우의 연기 또한 영화의 힘을 싣는다.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 카리스마를 뿜어냈던 하정우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연애에 숙맥인 남자로 분한다. 찌질하고, 궁상맞은 캐릭터를 연기한 그는 위트 넘치는 행동과 문어체 대사로 유쾌함을 자아낸다. <미스 홍당무>의 홍조된 얼굴에 맞먹는 ‘겨털’로 웃음을 전하는 공효진도 하정우와 찰떡궁합을 보여주며, 극을 이끈다.
극적인 구성이나 특별한 내용 없이 2시간을 이끄는 힘은 아마 자연스럽게 공감대가 형성되는 연애의 현실감일거다. 화성과 금성으로 표현된 남자와 여자의 관계처럼 같은 상황을 맞이함에도 서로 다른 생각을 갖는 주월과 희진은 우리의 모습과 일치한다. 대사와 갖가지 에피소드들도 사실감이 넘친다. 달짝지근한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에 질렸다면 현실감이 넘치는 이들의 로맨스에 푹 빠질 것이다.
2012년 2월 29일 수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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