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는 12시 종이 울리면 현실로 돌아온다. 반대로 이 남자 길(오웬 윌슨)은 환상의 세계로 진입한다. 심지어 이 환상의 세계는 길이 동경해 마지않았던 ‘골든 에이지’다. 자세한 사정은 이렇다. 파리 밤거리를 배회하던 시나리오 작가 길은, 이 무슨 조화인지, 자신이 예술의 황금기라 믿는 1920년대로 타임리프(Time Leap)한다. 파티장에 들어선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건네는 연인. 세상에, F 스콧 피츠제럴드와 그의 뮤즈 젤다란다. 낡은 술집에서 운치 있게 술을 마시고 있는 이 남자는 또 누구인가. “난 헤밍웨이요.” 뭐라고? 어니스트 헤밍웨이? 이건 꿈인가 생시인가. 우디 앨런의 세계에서 이건 보나마나 생시다.
우디 앨런은 21세기에 사는 한 남자를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TS 엘리엇, 루이스 부뉴엘, 장 콕토, 거투루드 스타인 등 전설적인 예술가들이 숨 쉬는 1920년대에 시치미 뚝 떼고 던져 놓는다. 낯선 풍경은 아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 허물기, 과장된 사실성, 위트 넘치는 대사 등은 이전 우디 앨런 영화에 나왔던 표식들이다. (과거와 현실을 넘나든다는 점에서, 스크린 속 환상과 스크린 밖 현실을 오갔던 우디 앨런의 1985년작 <카이로의 붉은 장미>와 맞닿아있다.) 우디 앨런의 품 안에서 배우들은 어김없이 말 많고 엉뚱한 인물들로 변모한다. 헤밍웨이를 마초로 피카소를 바람둥이로 바라본 우디 앨런의 접근도 흥미롭지만, 이런 역사적 인물들을 어떤 배우가 연기하는가를 지켜보는 기대감도 상당하다.
내용은 얼핏 과거의 향수를 추억하고 있는 것 같지만, 영화가 착지하는 곳은 정반대 지점이다. 1920년대로 간 남자는 그 곳 예술가들의 삶이 충만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보다 낭만적인 세상이 어디 있을까 싶다. 하지만 남자의 생각과 달리 그가 사랑하게 된 1920년대 여인 아드리아나(마리온 코티아르)는 드가, 고갱 등이 활약했던 1890년대 파리를 완벽한 ‘벨에포크’(황금시대)라 동경한다. 그런데 직접 만난 고갱과 드가는 또 르네상스 시대를 ‘골든 에이지’로 꼽는다.
결국 경험하지 못했기에 동경하게 된다는 걸, 절대적인 황금기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삶은 언제 어디서건 불만족스럽다는 걸, 그러하기에 현실은 도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쓰다듬어야 할 존재라는 걸 우디 앨런은 지그시 알려준다. <미드나잇 인 파리>는 칠순 넘은 노예술가의 삶의 통찰력이 묻어나는 영화인 셈이다. 물론 이 영화는 우디 앨런 최고의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이성보다 감성이 먼저 반응하는 영화, 당신을 결국 미소 짓게 할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조심해야 할 부분이라면 파리로 당장 달려가고 싶은 욕망을 부추기니, 시간과 주머니사정 여의치 않는 사람은 마음 단단히 먹길.
2012년 7월 6일 금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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