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테리아>는 바이브레이터 발명가 닥터 조셉 모티머 그랜빌을 모델로 한 영화다. 이 영화가 주는 놀라움은 바이브레이터라는 자극적인 소재에 있지 않다. 오히려 오늘날 유희를 위해 사용되는 자위기구가 실은 치료를 위한 의료도구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랜빌과 달림프에게 바이브레이터 발명을 전기 발명만큼이나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또 하나 눈여겨 볼 것은 히스테리아라는 질병이, 알고 보니 ‘성적 불만족’에 다름 아니라는 점이다. 영화는 여성 몸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빼곡했던 시절을 경쾌한 분위기로 바라본다. 19세기 런던 여성 1/4 이상이 히스테리아에 시달렸다는 대목은, 그 시대 여성들이 성 욕구 분출에 얼마나 취약했는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영화는 제목과 달리 전혀 히스테리컬하지 않다. 대단히 농밀한 걸 기대한건 아니지만 소재가 지닐법한 여러 잠재적 가능성에 비해 너무 얌전하고 착하다. 그러니 ‘성기에 이빨이 달린 여자’를 내세운 <티스>류의 영화를 상상하며 극장을 찾았다간 배신감에 ‘부르르’ 떨지 모른다. 오히려 이 영화는 현재 대한민국 사회와 맞물리는 지점에서 재미가 생긴다. <히스테리아>의 개봉 시기는 마치 작금의 대한민국을 냉소하기 위해 정교하게 계획된 시나리오처럼 보인다. 이 영화의 국내 포스터는 바이브레이터라는 단어가 저속하고 야하다는 이유로 유해판정을 받았다. 지상파 방송에서도 바이브레이터라는 단어로 인해 외면 받아야 했다. 최근 ‘콘돔’ 등 유력 정치인을 상대로 한 낯 뜨거운 검색어가 인터넷을 도배한 마당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시대착오적인 시대를 풍자하는 영화를 대하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후진가를, 이 영화 <히스테리아>가 극명히 보여주는 셈이다. 히스테리의 증상 중 하나가 우울증이라 했던가. 급속도로 우울해지는 기분이다.
2012년 8월 24일 금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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