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스페이시의 [유주얼 서스펙트]와 러셀 크로의 [LA 컨피덴셜]의 공통점은?
모두 뛰어난 반전으로 관객들의 뒷통수를 침으로써 스릴러 장르의 걸작이라 일컬어진다는 점.
로버트 드니로, 에드워드 노튼, 말론 브란도의 [스코어] 역시 관객과의 한판 머리 싸움을 걸어온다. 닉(로버트 드니로)은 25년간 금고털이 일을 해온 베테랑. 하지만 겉으로 그는 평범한 카페 주인일 뿐이다. 그가 그간 범망을 피해 온 것은 그가 견지해 온 몇 가지 원칙 때문. 아무리 액수가 큰 건이라 해도 100% 성공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무리하지 않는 것. 그리고 자신이 사는 동네 몬트리올 주변에서는 일을 벌이지 않는 것. 그래서 일을 마치면 절대 증거를 남기지 않고 뒤를 깔끔하게 하는 것은 물론, 그야말로 ‘산넘고 물 건너’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다. 마치 외국 여행에서 돌아온 이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에겐 그가 금고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애인 다이앤 (앤젤라 배셋)이 있고, 그에게 일을 제공하며, 작물을 처리해 주는 동업자 맥스(말론 브란도)가 있다.
장르 영화의 관습 관습을 충실히 따르는...
[스코어]는 헐리웃 영화답게(?) 스릴러 장르의 전형적인 관습을 그대로 따른다. 다시 말해 관객들의 예상을 뛰어넘지 못한다. 이쯤이면 주인공 닉은 범죄에서 손을 씻고 스튜어디스인 애인과 결혼해 안정적인 삶을 살고자 할 것이고, 그런 소망을 가진 그에게 당연히 맥스는 그가 꺼려하는 큰 건을 제의한다. 몬트리올 세관에 압류되어 있는 프랑스 황제의 보물 ‘홀’을 훔치자는 것. 국가 기관이라는 점과 몬트리올이라는 점. 모두 그간 닉이 철칙처럼 따르던 원칙에서 어긋나는 것이다. 그리고 닉이 거기에 가담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상황의 설정. 그 제의를 승락하기도 전에 조력자가 될 잭 펠러(에드원드 노튼)가 그의 앞에 모습을 나타내고, 그간 그가 진 빚과 동업자 맥스의 곤란한 처지는, 계획이 하나하나 진행되어 가는 과정에서 순간순간 망설이는 그를 꽁꽁 옭아맨다. 그렇듯 그를 막다른 골목으로 모는 상황은 관객들에게 측은함과 그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쪽으로 이끈다. 어느새 관객의 안으로 깊숙이 들어온 닉은 관객들을 그의 계획에 동참해 만들어 공범자로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그가 성공할 것임을 뻔히 앎에도 불구하고, 그가 조심조심 세관의 금고로 다가가는 그를 긴장하며 보게 만든다.
로버트 드니로+에드워드 노튼+말론 브란도=!
거기에 세 배우들의 연기도 한몫 했음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일 터이다. 말론 브란도는 세월의 흐름으로 인해 [대부]에서의 카리스마는 많이 빛바랬지만, 여전한 중후한 이미지로 작품에 무게감을 더해준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큰 볼거리는 로버트 드니로와 에드워드 노턴, 두 배우의 연기 대결. 신구 연기파 배우의 대표 주자들이라 할 수 있는 두 배우가 함께 출연했다는 것만으로도 영화값이 아깝지 않을 정도이다. 로버트 드니로는 자기 고집과, 이제는 현실 속에서 안주하고픈 소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을 통해 작품의 중심축을 잡아나갈 뿐 아니라 관객들을 자기에게로 빨아들여야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명불허전’의 진리를 다시금 일깨워줄 정도로 잘 소화해 낸다. 에드워드 노튼 역시 닉에 맞서 재능과 뛰어난 두뇌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뭔가 부족한 인물을 잘 표현해 낸다. 특히 보물을 위해 세관에 청소부로 취직하기 위해 일부러 장애인인 척하는 연기는 [유주얼 서스펙트]의 케빈 스페이시의 속임수에 버금갈 정도로 뛰어나다.
반전, 가벼운 감탄을 일게 하는...
세 연기파 배우의 뛰어난 연기가 작품의 3/4을 든든한 축으로 지탱한다면, 나머지는? 당연히 관객과의 한판 머리싸움이다. 바로 반전이 얼마나 관객들의 뒷통수를 칠 것인가 하는 것. 영민한 관객은 이미 이 영화의 성패가 긴장감 끝에 도달하는 반전에 달렸다는 것 역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 기대를 이 작품은 일정 부분(!) 저버리지 않는다. [식스 센스]에서 ‘브루스 윌리스는 귀신이다’라는 말의 위력을 실감했던지라, 재미를 위해 그 반전의 구체적 내용은 밝히진 않는다. (힌트! 제목은 멋으로 써놓은 것이 아니다.) 다만, ‘아’ 하는 짧은 감탄쯤은 나오게 한다는 정도만 밝혀둔다. 뭔가 흡족하진 않지만, 그래서 걸작이라고까지는 말할 순 없지만(물론 주연 배우의 무게만을 놓고 보면 달리 말할 수도 있지만), 한동안 괜찮은 스릴러에 굶주렸던 이에게 이 영화는 반가운 선물임에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