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사극 <광해 : 왕이 된 남자>(이하 ‘<광해>’)는 혼란스러웠던 광해군 시절의 정치판을 끌어다 이상적인 지도자를 등장시킨다. 그 주인공은 천민이자 광대인 하선이다. 그는 허균의 말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 이전에 인간미 넘치는 보통 사람이다. 기미 나인 사월이(심은경)의 가슴 아픈 사연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가 하면, 지아비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권력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중전(한효주)의 모습을 안타까워한다. 백성을 살리고자 만든 대동법이 돈 많은 지주들로 인해 철폐된 일과 명과의 명분 때문에 무고한 백성을 전쟁터로 보내야 하다는 대신들의 주장에 분노하기도 한다. 하선은 감정적으로 정사를 돌보면 큰 화를 부를 수 있다고 말하는 허균의 충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인간냄새 물씬 풍기는 하선이 이상적인 군주의 모습으로 탈바꿈 되는 과정은 쏠쏠한 재미를 준다. 권력 다툼에만 정신 팔린 신하들에게 호통을 치는 모습은 통쾌함까지 불러일으킨다.
<광해>는 진지한 정치 드라마 이전에 유머가 살아 숨 쉬는 작품이다. 왕처럼 행동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하선의 궁중생활은 코믹하게 그려진다. 중전과 도부장(김인권) 등 궁궐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펼치는 몸 개그는 웃음의 강도를 높인다. 코믹함이 진중한 분위기를 한 순간에 베어버리기는 한다. 하지만 긴장과 이완을 적절히 배합한 감독의 연출력 덕분에 자연스런 흐름이 유지된다.
<광해>는 1인 2역을 맡은 배우의 역량에 따라 보는 재미가 달라질 공산이 큰 영화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병헌은 재미를 반감시키기는커녕 영화의 중심에서 쾌감을 높인다. 1인 2역을 맡은 그는 강한 카리스마를 내뿜으면서도 뭔가 불안에 떨고 있는 광해, 한 없이 가볍지만 인간미 넘치는 광대 하선의 모습을 잘 표현한다. 눈빛 하나에도 강도를 달리해 마치 두 사람이 연기하고 있다는 착각을 들게 할 정도다. 다른 배우들의 호연도 이병헌의 연기를 빛나게 한다. 류승룡은 진중한 매력을 선보이며 코믹한 하선과의 균형감을 유지한다. 분량은 적지만 한효주, 김인권, 장광, 심은경 등은 적재적소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며 시너지 효과를 낸다.
감독은 제작보고회에서 ‘우리가 원하는 왕은 어떤 모습일까’에 초점을 맞췄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우리가 원하는 왕은 광해일까? 아니면 천민 하선일까? 아님 이 두 가지 모습을 모두 갖고 있는 인물일까? 대선이 100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광해>는 새로운 시대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낼 힘이 충분해 보인다.
2012년 9월 12일 수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