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린의 만화 속에는 천성적으로 인생의 고난과 두려움에 맞서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녀의 데뷔작인 [북해의 별]에서는 나라가 그를 배신해도 결국 민중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멤피스 백작'을 창조되었다. 또한 영웅에게는 그에 걸맞는 여인이 등장하는데 그녀는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아름답고 고고하다. 그녀의 인생 역시 평범하지 않는 어려움이 있으니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남자을 위한 그녀의 노력은 하늘조차 감동하게 한다.
[비천무]는 그 거리를 떠돌아다니던 어린 '진하'와 몽고인의 서녀로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어린 '설리'의 만남으로 시작한다. '진하'의 피리소리는 '설리'의 아름다운 춤으로 승화되고, 서럽고 외로운 어린시절을 함께 한 두 사람은 곧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설리'의 집안과 '진하'의 집안 사이에는 서로 용서할 수 없는 깊은 원한으로 맺어졌으니 두 사람의 운명은 곧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리게 된다.
영화 [비천무]에는 밖으로 터져나오지 않는 안에서만 도는 감정이 있다. 설리의 모습이 아무리 슬퍼도 그저 그렇게 보인다. 자하랑이 어쩔 수 없는 살인을 저지르고 울분에 찬 고함을 질러도 그저 그렇게 보일 뿐이다. 더구나 비천신기의 비법이 눈 앞에서 펼쳐져도 내 눈에는 그게 그저 그런 것 같다. 설리가 자하랑의 원수를 갚고자 적장의 앞에서 비천무를 추어도 그게 그저 그럴 뿐이다.
영화 [비천무]는 만화 [비천무]의 다이제스트판 같다. 만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설명을 해준다. 이게 그런 이야기였군. 그러나 만화를 본 사람들은 그 이야기들이 지루하기 그지없다. 원작의 힘이 빠져나간 영화 [비천무]에는 볼거리만 있을 뿐 가슴을 치는 애절한 사랑이 없다. 아쉽다. 그것이 너무 아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