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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연애행각] <007 스카이폴> 실바! 그 여자는 정말 나빴어요
2012년 12월 3일 월요일 | 앨리스 이메일


처음 본 순간부터 불편했다. 아직 입 밖으로 한 마디도 내뱉지 않은 상태, 아무런 표정조차 짓지 않았는데 등장과 함께 주변 공기부터 온통 불편해지는 느낌이었다. 충분히 공포스럽고 긴장되는 상황임은 틀림 없지만 무섭기 이전에 그냥 봐주기가 너무나 불편했던 것이다.

<스카이폴>의 '실바'가 예사롭지 않은 등장과 함께 침묵을 깨고 특유의 기괴한 몸짓과 표정을 동원하여 입을 떼기 시작하면, 그 불편함은 극장의 높은 천장을 뚫고 나갈 기세로 증폭된다. 커다란 얼굴에 커다란 눈, 거기다 짙은 쌍커플. 덩치도 커다란데 잇몸이 훤히 드러나는, 지나치게 커다란 웃음까지 짓는다. 아니 대체 어디서 저런 남자가 튀어나왔어?! 지금까지 영화 속에서 한번도 본 적 없는 불편한 캐릭터가 확실하다. <다크나이트>에서 히스레저가 연기했던 조커? 그도 확실히 기괴하고 불편했지만, 이 정돈 아냐. 불편함 이전에 압도적인 공포를 떠올리게 했었지. 악당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보기만 해도 무서운 기가 전해져 오는 수많은 영화 속 캐릭터 중에서, 공포보다 앞선 불편함을 스크린 가득 끼얹어 버리는 캐릭터는 네가 처음이야. 실바! 정말 불편해 미치겠어!

본드의 섹시함은 그가 늙은 개가 되었건 말건 간에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에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본드가 포크레인으로 기차 천장을 뚫고 내려왔을 때 착지와 동시에 소매 끝의 커프스 버튼을 매만지는 장면에서 터져 나오던 여성 관객들의 낮은 탄식을 떠올려 보라. 스코틀랜드의 협곡에서, 그리고 M16 옥상에서 빅밴을 바라보며 서 있던 빅밴보다 늠름하던 뒤태. 숨막히게 섹시한 본드의 등짝은 그가 죽을 힘을 다해 달리거나 헤엄을 치거나 하지 않아도, 그저 뒤돌아 서 있기만 해도 최고임을 말해준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영화를 본 뒤 자꾸만 생각나는 것은 왜 본드가 아니라 실바인 것이지?

실바도 한 땐 본드였다. 잘나가던 과거는 분명하고, 언제든 선악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존재였다. 똑똑하고 강한 남자. 하지만 조직으로부터 버림 받은 뒤 상처를 받고, 무너져버렸다. 버림 받은 남자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그것이 집착이든 폭력이든 어떤 형태로 발현되던지 간에 지울 수 없는 본질적인 나약함이 뿌리 깊게 박혀버린 것이다.

실바는 완벽하게 섹시한 본드의 내면 깊은 곳의 고민을 반영하는 거울 같은 존재이다. 그 둘의 시작은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드는 자신을 버린 조직을 떠날 수 있는 완벽한 기회를 져버리고 돌아왔다. 책임감에 애국심까지 갖춘 남자, 용서하느냐 복수하느냐의 문제는 일말의 개인적 목적일 뿐이라며 쿨하게 잊고 임무를 완수하는 남자! 그러니 우리가 만나는 남자들은 대부분 본드보단 실바에 가깝다. 사람이 어떻게 쿨할 수가 있겠어? 우리 같이 나약한 인간들은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죄를 묻고 잘못을 따지고 들지만 사실은 같이 죽고 싶을 정도로 찌질하고 상처에 연연하는 것이다.

기괴하고 몹쓸 악당이라는 점에서가 아니라, 버림받은 조직 혹은 나를 버린 여자 앞에 나타나 자기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다그쳐 묻고 싶어하는 순정마초 실바에게 연민을 느낀다. 분야를 막론하고 TV나 책 등 각종 매체들이 매일 같이 찬양하기 바쁜 성공사례를 떠올려 보면 쉽다.

성공한 1%들의 이야기를 돋보이게 해주는 것은 그 하나의 성공 사례를 위해 그 분야에서 무수히 미끄러지고 자빠진 인생들의 갈매기 우는 사연 아니겠나. 연애도 마찬가지. 되는 놈들은 매번 되고, 우리네 나머지 인생들은 번번히 소주병을 굴리며 차갑게 식은 연인의 마음에 대고 눈치 없이 새벽마다 ‘자니?’ 카톡을 날리고 또 날리는 것이다. 흠 잡을 데 없이 성공한 남자 제임스 본드의 공공재 같은 매력에 우린 모두 동의하지만, 바로 그 흠을 드러내는 순간 너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평범하고 끈끈한 연민의 애정이 싹트며 인간적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실바, 당신 말이 맞아요. 그 여자는 정말 나빴어요. 나와 같이 돼지국밥에 소주를 마시며 bitch는 잊읍시다.






2012년 12월 3일 월요일 |
글_앨리스(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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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du777
영화를 실바의 관점에서 본다는 또 다른 해석이 너무나 신선했고 제 개인적인 공감대까지 느낄 수 있게 되었던 글입니다. 단순히 영화라는 생각으로 연민을 느끼지 못하고 봤던 영화지만 내가 저 상황에 처한 본인이라는 생각으로 본다면 어쩌면 사람이 가진 지극히 당연한 모습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007을 다른 관점으로 생각할 수 있었던 좋은 글이네요. 정말 잘 봤습니다~ ^^   
2012-12-12 00:09
bruce5
실바가 처음에 정의의 편에 섰던 첩보요원이든 아니든 영화는 그를 악당으로 지명하고 본드와 대적하게 만듭니다. 사실 이유없는 악당이 어디 없겠는가만은 실바는 외모적으로도 본드와 대조적이면서도 그래도 천재성만은 제임스본드이상가는 인물이더군요!   
2012-12-12 00:05
many999
삐뚤어진애정이라해야하나... 전 흥미롭고 좋았어요   
2012-12-12 00:02
winni85
흥미롭네요.대사가 왠지 모르게 재밌네요.   
2012-12-12 00:01
nixkr
역대 최고의 오프닝이며 내용적으로 실망한 사람들도 있는데 그러나 전 재밌게 봤네요 007시리즈는 따로 보관하고 있을정도니깐요
내용보다도 전 '앞으로도 007은 계속된다 007특유의 정체성은 유지하되 새로운 007을 기대하라'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기대되지요   
2012-12-11 23:57
cool0167
기대 되는 작품 입니다 가족 하고 보고 싶네요 ...   
2012-12-11 23:57
jhkgr
재밌는 평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기대됩니다 ^^ㅋ   
2012-12-11 23:46
lifeyo
우리 같이 나약한 인간들은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죄를 묻고 잘못을 따지고 들지만 사실은 같이 죽고 싶을 정도로 찌질하고 상처에 연연하는 것이다.


이 부분 너무 공감되네요..
실바는 쿨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부분에 있어 자신을 드러내는 용감함이 보였던 것 같군요~
안타깝지만요..   
2012-12-11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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