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의 위력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지난 금요일(12월 14일) 개봉한 이 영화는 개봉 3일 만에 서울관객 28만 명과 전국관객 70만 명을 동원했다. 이 같은 수치는 지금껏 한국 영화 [친구]가 가지고 있던 기록을 갱신하는 것이다. 이미 예매로만 22만 장 이상을 팔아 치운 해리포터의 위력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던 일이지만 이정도로 엄청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해리포터 덕분에 웬만한 영화들은 명함도 꺼내지 못하게 되었으며 그간 한국영화의 장기흥행에도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왜 화산고가 해리포터를 피하기 위해 개봉을 일주일 앞당겼는지 조금은 이해가 갈 법도 하다.
해리포터가 이만큼이나 많은 관객을 끌어 모은 것은 물론 영화적 화제성과 더불어 엄청난 물량공세 마케팅 등 다양한 요소의 영향이 크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많은 관객을 수용 할 수 있는 스크린을 확보하는데 총력을 기울였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올 겨울 빅3 중에 가장 많은 스크린을 확보한 해리포터는 서울에서만 76개 스크린(좌석 수 21,415석)을 확보 했으며 전국적으로 150여 개 이상의 극장을 두로 섭렵했다. 이 같은 수치는 서울시와 전국을 포함해 35% 가량의 극장이 해리포터만 틀었다는 계산이 된다.
지난 주 박스오피스 2위에 오른 두사부일체의 경우 37개(서울 기준) 스크린에서, 3위에 오른 화산고는 66개(서울 기준) 스크린에서 영화를 틀었다. 해리포터를 포함해 이 세 편의 영화가 서울 시내 150개의 개봉관을 점령했으며 전국적으로 400개 이상의 극장에 도배를 했다.
지난 주 극장을 찾은 관객은 약 43만 명(서울 관객 기준) 정도. 이중 상위 1, 2, 3위가 끌어간 관객이 40만 명 가량이 되니 나머지 영화들은 박스오피스 순위를 10위까지 매겨주기 위해 존재했던 것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미미한 수준을 보였을 뿐이다.
최근 들어 유행처럼 생겨나고 있는 멀티플렉스의 장점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일단 표면적으로는 한 공간에서 다양한 영화와 문화시설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최고의 장점으로 꼽을 수 있으리라 본다. 하지만 다양한 영화를 소개하는데 일조를 해야 할 이들 멀티플렉스들의 최근 작태를 보면 도무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스크린수가 5개~15개로 비교적 다양한 영화가 상영될 것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는 이들은 실제로 고작 세 편에서 네 편의 영화만이 상영되는 것을 보고 선택의 폭이 생각만큼 넓지 않다는 사실로 실망하기 일수다. 현재 국내 최다 스크린을 확보하고 있는 강남의 M극장의 경우 5개의 스크린에서 해리포터를 상영하고 있으며 두사부일체와 화산고에 각각 4개씩 스크린을 배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종로 S극장의 경우 해리포터에 3개, 화산고에 2개, 두사부일체에 1개의 스크린을 배정해 도무지 해리포터, 화산고, 두사부일체 외의 영화들은 찾아 보기도 힘든 실정이다.
이번 겨울 씨즌에는 특히나 대작들이 줄줄이 개봉을 하거나 라인업에 올라있어 스크린을 선점하려는 배급사들의 물밑 작업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 일단 많은 수의 상영관을 확보해 크게 한 몫 건지겠다는 심사는 배급사와 극장측의 담합으로 어느 정도 실효를 거두고 있는 상황이다. 멀티플렉스라는 명목아래 다양성을 추구했던 극장들 역시도 일단은 돈을 벌고 보자는 생각으로 여러 개 스크린에 시간대 별로 영화를 상영하는 방법으로 관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올 부천 국제 환타스틱 영화제 경쟁 부문에 출품되면서 화제를 모았던 일본 영화 “턴”은 홍콩 소극장에서 무려 두 달째 상영중이며, 일본 영화 “하나비”의 경우 박스오피스 순위와는 무관하게 변두리 소극장에서 장기 상영되며 인기를 얻은 기록이 있다. 씨네큐브, 하이퍼텍 나다 같은 극장들의 행보를 주목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 극장은 보다 다양한 영화들을 개봉하고 오랜 시간 상영하면서 영화에 대한 재평가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타인의 취향” 같은 영화가 당시 함께 상영되었던 어떤 영화들 보다 좌석 점유율이 높았으며 그 어떤 대작들 보다 오랜 시간 상영되었음을 생각해 볼 때 현재 획일화 된 대형 배급체계가 그렇게 좋은 방법만은 아니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무조건 극장부터 잡고 한번에 많은 관객을 모으려는 시도는 비단 대형 오락영화 뿐만 아니라 작은 영화들, 예술 영화에서도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사실 “와이키키 브라더스” 같은 영화들이 한번에 10개 15개 스크린에 걸릴 필요가 있을까? 오히려 변두리 극장이라도 영화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처음부터 장기상영을 목표로 꾸준한 관객 동원을 기대하는 편이 옳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실제로 두 개 스크린을 임대해 상영중인 현재가 처음 영화를 공개했을 당시보다 훨씬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관심을 끌고 있음을 상기할 때 영화의 종류에 따른 다양한 마케팅 방법이 요원하단 생각이다.
“유 캔 카운트 온 미” 같은 영화들이 고래싸움 속에 새우등 터지듯 사라지고 있는 사실이 너무도 가슴 아프다.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 “예수의 마지막 유혹”이 개봉도 못하고 여전히 대기중이란 사실도 안타깝다. “꽃섬” 같은 영화가 오락영화의 틈바구니 속에서 일주일도 못채우고 간판을 내린 사실이 눈물겹다. 멀티플렉스도 좋지만 “원더풀 라이프” “타임리스 리멤버” 같은 영화들을 오랜 시간 걸어 둘 수 있는 씨네마테크도 좀 더 생겨나고, 영화를 단순히 즐기는 입장이 아니라 좀더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심안을 가진 관객들도 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