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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 싸움 구경 안 갈라요?
피도 눈물도 없이 | 2002년 3월 7일 목요일 | 우진 이메일

연기하느라 참 고생했겠구나 싶었다. 한 순간도 몸 아낄 새 없이 구르고 날고 치고 박고 내던지고 내동댕이쳐지던 배우들. 그들이 뿜어내는 거친 숨소리에 가슴 조이다가 문득, 류승완 감독이 궁금해졌다. 도대체 그는 어떤 사람이길래 저렇게 처절한 난투극을 독하게 연출해냈을까.

철저한 약육강식의 법칙만이 적용되는 곳, 투견장. 영화는 개들의 핏발 선 눈빛과 사납게 드러낸 이빨 틈새로 살며시 '인간'을 끼워 넣으며 시작한다. 앞으로 등장인물들이 말 그대로 '피도 눈물도 없는' 싸움을 펼칠 것임을 예고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감독은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공들인 흔적이 역력한 액션장면들은 이 영화의 주축을 이루며 제 몫을 톡톡히 해낸다.

영화에 등장하는 액션들은 그리 낯선 종류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익숙한 듯한 맥락 속에 가늠할 수 있는 동작들을 구경하게 된다. 하지만 감독은 얼마간 정형화된 그 장면들을 적당히 조합하여 알맞은 곳에 배치하는 데 능란한 솜씨를 보여준다. 게다가 세련된 편집 기법을 이용, 군데군데 기교를 부림으로써 독특한 스타일을 구축해낸다.

비쥬얼적인 면에 치중하는 영화들이 저지르기 쉬운 허점 중의 하나가 규모만 거창하고, 엉성한 구성이다. 하지만 [피도 눈물도 없이]는 처음부터 작은 골격을 택하고 있다. 범위를 좁힘으로써 이야기 전개가 허약해질 위험은 최소화된다. 따라서 이 영화의 플롯은 단순하지만 깔끔하다. 등장인물이 꽤 많은 편인데도 각각의 개별적인 사연이 무리 없이 정리되어 결말로 모아진다. 그리고 이렇게 단순한 구성은 관객이 이 영화의 장점인 액션 장면에 몰입할 수 있도록 이끄는 역할도 한다.

또한 이 영화에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대거 등장한다. 수진 역의 전도연과 경신 역의 이혜영뿐만 아니라, 독불 정재영, 연륜이 묻어나는 카리스마 신구, 왕년의 자존심만 남은 한물간 깡패 백일섭, 미워할 수 없는 동네 양아치 류승범, 심지어 침묵맨으로 분한 무술감독 정두홍까지 각자 개성있는 성격을 연기하고 있는 것. 각각의 인물들은 저마다의 또렷한 성격을 물씬 드러내며 영화에 감칠맛을 더한다.

이 등장인물들이 입체적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 또한 플롯의 무리 없는 흐름에 큰 몫을 한다. [피도 눈물도 없이]의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적절히 변화한다. '우리편=선인/적=악당'이라는 이분법은 처음부터 없을 뿐 아니라, 등장인물들은 선과 악, 강함과 약함의 모호한 경계를 끊임없이 넘나든다. 영화는 한 인간이 지니고 있는 복합적인 면모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영화에 현실적인 활기를 불어넣는다.

하지만 [피도 눈물도 없이]가 다수를 위한 영화는 아니다. 다소 잔인한 폭력은 심장 약하고 마음 여린 관객에게는 불편하고, 디테일하고 긴 호흡의 액션장면들은 웬만큼 액션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 아니고서는 지루하다. 거기다 영화가 표방하는 느와르 장르 특유의 어둑어둑한 분위기까지 더해지면 급기야, 치열한 몸부림이 펼쳐지는 스크린을 앞에 두고도 꾸벅꾸벅 졸 위험마저 있다. 하지만 인내심을 갖고, '완전한 창조는 더 이상 불가능하며 다만 기존의 창조물을 어떻게 조합하고 배열해낼 것인지가 중심적인 화두로 떠오른' 이 시대의 영화에 대한 류승완 감독 나름의 공식을 음미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

3 )
ejin4rang
그런대로 괜찮다   
2008-10-16 16:21
rudesunny
너무 너무 기대됩니다.   
2008-01-21 18:19
kangwondo77
리뷰 잘 봤어요..좋은 글 감사해요..   
2007-04-27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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