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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풍자극의 노련미
고스포드 파크 | 2002년 4월 14일 일요일 | 우진 이메일

올해 아카데미 각본상을 거머쥔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고스포드 파크]는 정통 추리극의 형식을 재현한 작품이다. 영화는 고풍스런 저택에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한적한 곳에 위치한 대저택은 밀실구조로 용의자를 한정짓는 구실을 하고, 카메라는 초대받은 손님들을 찬찬히 훑으며 그들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드러냄으로써 여러 인물을 용의자 선상에 올려둔다.

산만하고 지루하게 이어지던 초반부 인물 소개가 끝나고, 저택의 주인이 살해당하면 영화의 전개에는 가속도가 붙는다. 현장에는 형사가 투입되고, 그를 중심으로 수사가 벌어진다. 하지만 영화에서 사건을 풀어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형사는 관객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관객에게 범인의 실마리를 던져주는 것은 초반부 인물 소개와 이어지는 카메라의 시선이다.

감독은 다른 추리영화에서 그렇듯, '탐정'을 앞세우지 않는다. 형사는 뒤늦게 나타나 용의자들에게 피상적인 질문만을 던질 뿐이다. 그의 역할은 이미 관객에게 인식된 용의자들의 혐의점만을 재차 확인시켜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사건의 본질을 파헤치지 못한 채 변죽만 울리는 형사의 모습은 관습적인 삶에 매몰되어 버린 사회 의식과 겹쳐진다. (또한 영화의 초점이 '범인이 누구냐'라는 단순한 질문에 맞춰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실 영화는 '사건'보다 '일상'을 더 비틀어 놓는다. 플롯의 줄기를 이루는 귀족들의 기품있는 생활은 각각의 방으로 숨어드는 순간 추한 욕망으로 탈바꿈한다. 그들의 고상한 사교란 스스로의 '몫'을 한 줌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계산된 행동들의 나열, 그리고 암암리에 서로를 감시하는 신경전에 지나지 않는다. 우아한 클래식 선율과 함께 비춰지는 이 굴절된 상은 하인들의 냉담한 시선으로 관찰된다.

하인들은 귀족들에게 있어서는 이미 '물건'과 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겉으로 보여지는 하찮은 역할과 달리 하인들은 플롯의 무게중심을 잡고 있다. 그들은 귀족들의 삶을 어슷하게 반영하기도 하고, 차갑게 관찰하기도 하면서 영화의 간지러운 부분을 긁어준다. 후반부에서는 미스터리의 폭로자이자 주체자로 떠오르며 (플롯을 쥐고 흔들던)입지를 확고히 굳힌다.

귀족과 하인을 대비시키는 구도는 공간적으로 형상화된다. 카메라는 귀족들의 터전인 위층과 하인들의 터전인 아래층을 수직으로 오르내리며, 각 층을 떠도는 미세한 갈등 구조를 잡아낸다. 분리되어 있는 듯 했던 위층과 아래층의 갈등은 그러나 결국 하나로 응집되어 폭발하고 만다.

감독은 [고스포드 파크]를 통해 인간들을 따끔하게 꼬집는다. 하지만 그는 공허한 토론을 스크린에 펼쳐 놓지 않는다. 에둘러 관객의 머리를 짓누르는, 드러날 듯 드러나지 않을 듯 아슬아슬하게 비틀린 풍자는 [고스포드 파크]의 단단한 힘이다.

3 )
ejin4rang
기대합니다   
2008-10-16 16:12
rudesunny
너무 너무 기대됩니다.   
2008-01-21 18:26
kangwondo77
리뷰 잘 봤어요..좋은 글 감사해요..   
2007-04-27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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