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
감독: 장항준
배우: 유해진, 박지훈, 유지태, 전미도, 김민, 이준혁
장르: 사극, 드라마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시간: 117분
개봉: 2월 4일
간단평
강원도 영월 산골, 광천골의 촌장 ‘엄흥도’(유해진)는 옆 마을 노루골의 넉넉한 살림이 한양에서 귀양살이 온 양반 덕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굶주린 마을 사람들을 위해 유배지를 자청하고 나선 엄흥도. 마침 한양에서는 계유정난으로 왕위에서 쫓겨난 어린 왕 ‘이홍위’(박지훈)가 유배길에 오른다. 실록의 짧은 기록에서 출발한 <왕과 사는 남자>는 영화적 상상력을 덧입혀 단종의 마지막 길을 다시 채색한다.
세조의 반정과 단종의 비극은 이미 수차례 변주된 익숙한 소재다. 하지만 장항준 감독은 권력 암투라는 정형화된 틀을 벗어나, 왕과 촌부의 ‘우정’이라는 뜻밖의 지점에 닻을 내린다. 권력 투쟁의 정치극이 아닌 휴먼드라마라는 선택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이다. 폐위된 왕과 그의 일상을 감시해야 하는 촌장이라는 관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신분과 역할을 넘어선 인간적인 유대로 변모한다. 두 사람이 나누는 감정의 결은 시대와 세대를 초월해 보편적인 울림을 남긴다.
영화는 익히 알고 있는 비극적 결말을 향해 가면서도 리듬 조절에 능숙하다. 초반에는 장항준 감독 특유의 가벼운 터치로 문을 열고, 중반 이후부터는 점점 무게를 더한다. 그리고 끝내는 마치 어린 자식을 떠나보내는 부모의 마음처럼, 애틋하고 절절한 정서로 관객을 끌어당긴다. 웃음과 눈물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흐름이 자연스럽다.
무엇보다 이 작품을 견인하는 힘은 유해진과 박지훈의 연기다. 박지훈은 사극의 문법을 유연하게 체화하며 배우로서의 저력을 증명한다. 그의 깊고 우수 어린 눈동자는 백 마디 대사보다 강렬한 서사를 담아내며 관객의 마음을 속절없이 흔든다. 이에 화답하는 유해진은 찰나의 해학부터 끓어오르는 비극까지, 그 모든 감정의 진폭을 자신의 얼굴에 고스란히 새겨낸다. 웃음과 눈물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그의 다채로운 얼굴은 극의 중심을 단단히 잡으며 작품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후반부에 배치된 금성대군(이준혁)의 단종 복위 거사는 영화의 결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도 긴장감을 확 끌어올리는 장치다. 왕과 촌부의 우정만을 따라갔다면 자칫 정서적으로 단조로워질 수 있었던 지점에서, 장항준 감독은 반란 모의라는 사건을 통해 스케일과 박력을 더한다. 한명회로 분한 유지태는 짧은 등장만으로도 권력의 냉혹함을 각인시키고, 금성대군 이준혁 역시 단정한 외양 속에 결기를 품은 인물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극이자, 설 명절 연휴에 맞춰 가족 관객을 염두에 둔 작품이라는 점도 반갑다. 장항준 감독의 대중적인 감각이 더해진 <왕과 사는 남자>는 묵직하되 어렵지 않고, 익숙하되 가볍지 않다. 역사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온기를 조용히 되새기게 한다.
2026년 2월 4일 수요일 | 글 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