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이나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은 참으로 행복한 영화다. 관객들이 일정하게 극장을 찾아와 줄 것이 확실시 되기 때문에 극장을 잡기도 어렵지 않고 또한 개봉일을 정하는데도 하등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같이 커다란 덩치의 작품들이 있는 반면 필시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하나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져야만 했던 작은 영화들 역시도 올 연말에는 특별히 많이 눈에 띄고 있다. 칸느 영화제 4개 부문 수상이라는 초유의 기록을 세웠던 미카엘 하케네 감독의 <피아니스트>는 11월말로 개봉을 결정 헀다가 극장을 잡지 못하고 그만 내년 2월로 개봉을 미루고 말았다. 지금까지 홍보와 마케팅 비용으로 사용된 금액은 고스란히 허공에 날리게 생긴 것이다. 이런 영화는 비단 <피아니스트> 뿐만이 아니다. 100편이 넘는 신작들이 쏟아진 하반기 라인업 때문에 극장을 잡기위한 각 영화들의 몸싸움은 전쟁을 방불케 하고 있다.
▶ 이브의 아름다운 키스 : 그래도 우리는 다행?
동성애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전혀 거북하거나 낯설지 않도록 자연스러움으로 똘똘 뭉친 <이브의 아름다운 키스>는 그래도 20세기 폭스라는 든든한 직배사 덕에 비교적 스크린을 쉽게 확보 할 수 있었던 케이스다. 미국에서야 폭발적인 인기 덕분에 극장 수를 계속 늘려갔던 작품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런 영화가 크게 성공하기에는 하늘에 별 따기 만큼 어려웠으리란 생각이다.
개봉 1주일 만에 대부분의 상영관에서 간판을 내리고 말았지만, 메인 개봉관이었던 씨네코아에서는 주말 매진을 기록하는 등 인기몰이에 성공한 운 좋은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여전히 상영하는 극장이 남아 있으니 늦기 전에 극장을 찾아도 좋을듯 싶고, 조만간 비디오와 DVD로 출시된다고 하니, 스크린에서 감상을 놓친 사람들이라면 다른 기회를 노려 보는 것도 좋겠다.
▶ 도니다코 : 우리, 재개봉 하게 해 주세요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 출품 되면서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도니다코>는 지난해 <메멘토>와 함께 선댄스 최고의 작품으로 주목 받은 전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9월에 개봉하려 했던 당초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면서 11월 22일 단관 개봉으로 소임을 다하고 말았다. 그것도 하루 2회 상영이라는 초라한 시간표로 인해 관객들은 이 영화가 개봉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 daum까페에서는 이 영화의 재개봉을 추진하는 모임이 자발적으로 형성되는 등 영화를 살리기 위한 움직임이 더해지고 있다. 과연 되살아 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참으로 그냥 흘려 보내기에는 아까운 작품임에 틀림없다.(daum에서 도니다코 라는 이름으로 검색하면 카페가 나온다)
▶ 걸 파이트 : 흥행에 펀치를 날려주렴!
모 주간지 영화 평론가들의 별점을 보면 이 영화는 완전히 만점에 가까운 지지를 얻고 있음을 직접 확인 할 수 있다. 그간 놀랍도록 훌륭한 작품을 보급하는데 힘을 쏟았던 미로비전에서 하반기에 야심차게 등장시킨 이 영화는 그러나 미로비젼 자회사에서 운영하는 미로 스페이스 단관에서 현재 어렵게 상영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레지던트 이블>에서 파워풀한 액션 연기를 선보인바 있는 미셸 로드리게즈는 이 작품을 통해 진정한 연기자로 거듭났다는 평을 듣고 있으며, 그 가능성 역시 엄청나다는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여자 권투선수라는 비교적 평범하지 않은 주인공을 내세운 이 작품은 폭력을 다스리기 위한 펀치로 감동의 물결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작품이다.
▶ 텐 미니츠 트럼펫 : 우린 덤도 줍니다
2002년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폐막작으로 선보인바 있는 <텐 미니츠 트럼펫>은 코아 아트홀에서 꾸준히 상영되면서 그나마 지속적인 관객몰이를 하고 있는 작품이다. 베르너 헤어조그, 짐 자무쉬, 빔 벤더스, 스파이크 리, 첸 카이거 등등 그 이름만으로도 화려한 텐 미니츠 트럼펫은 7명의 감독이 각기 10분 여 동안 단편을 찍어 하나의 이름으로 작품들을 모아 둔 것이다.
찰라의 미학을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을 보면 왕가위 감독의 걸작 <화양연화>도 공짜로 볼 수 있다고 하니, 늦기 전에 극장을 찾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란 생각이다. 한편 값으로 그 어떤 영화들 보다 영양가가 넘치는 두 작품을 동시에 볼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매력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약한 자는 이렇게라도 살아 보려고 애쓰고 있다.
어떻게든 관객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하는 이들 영화에 더 많은 발걸음이 찾아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 격려하고 응원해서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영화들도 당당히 개봉 날짜 정하고 다양한 극장에서 관객들에게 선보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 아직까지 대한민국의 씨네키드들은 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