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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소가 한 풀 꺾인 우디앨런 코미디
스몰 타임 크룩스 | 2003년 1월 15일 수요일 | 박우진 이메일

신경 쇠약에 걸린 남자, 우디 앨런이 얼빵한 삼류 사기꾼으로 다시 태어났다. 자신의 머리가 나쁘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을 만큼 머리가 나쁜데다가, 어떤 만류에도 굴하지 않는 굳은 심지와 무모함까지 갖춘 그는 그의 계획을 칭송해 마다 않는, 그보다 조금 더 멍청한 몇몇을 거느리고 희대의 도둑질을 실행에 옮긴다. ‘땅파면 돈 나오냐’는 어르신들의 타박을 마침 귀를 후비며 지나가던 우디가 ‘땅파면 돈 나온다’로 잘못 듣고 옛 말씀 실천하여 나도 한 번 부귀 영화를 누려보리라 결심이나 한 듯 온 몸 바쳐 땅 파기, 이른바 확장(?) 공사에 돌입하는데 나오라는 돈이 땅 속에서 솟구치지는 않고 전혀 엉뚱한 곳에서 나오니, 문제라면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어찌 됐든 결국은 진짜 확장에 성공, 돈방석에 냉큼 올라앉게 된다나. 처갓집 말뚝에 허리가 부러질 때까지 절을 해도 시원찮을 이 억세게 운 좋은 우디네 인생도 시원찮은 과거를 청산하고 드디어 부귀 영화 모드로 전환한다 하니 기대하시라.

우디 앨런은 코미디가 지닌 풍자의 매력을 가장 잘 이용하는 감독 중 한 명이다. 상류 사회의 고상한 척 우아 떠는 먹물들의 속물 근성을 까발려 오던 그의 행보는 <스몰 타임 크룩스>에서도 이어진다. 졸부의 상류 사회 편입 과정을 통해 윗동네 교양의 꺼풀을 벗겨 내고 그 안에서 들끓고 있는 천박한 욕망을 드러낸다. 오로지 돈 때문에, 교양을 전수한다는 핑계로 졸부 여성의 애타는 가슴을 야금야금 이용해 먹다가 필요 없어지자 매정하게 그녀를 내치는 데이빗이 바로 그러한 상류 사회를 대표하는 인물. 데이빗 역할은 휴 그랜트가 맡았는데, 다른 어떤 배우를 대입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이미지는 역할에 똑 들어맞는다.

그러나 이런 예리한 비판이 사나워지지 않고 웃음 속에 둥글둥글 묻어나는 것은 기본적으로 영화의 시각이 따뜻하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다. 모진 풍파를 겪고 만신창이가 된 채 허탈한 마음에 술이나 홀짝이고 있는 프렌치에게 그래도 늘 그녀를 사랑하는 한 사람을 보내주고 윈저 백작의 푸른 담배갑 하나를 쥐어주며 영화는 이렇게 속삭인다. ‘돈이 문제지 사람이 문제겠수 다시 시작해 보구랴.’

우디 앨런 표 영화답게 발랄한 수다는 여전하지만 전반적으로 재치가 덜 하여 어딘가 맥이 빠진 듯 하다. 어디서 들어본 듯 때때로 예상할 수 있는, 진부한 대사가 가장 큰 약점. 물론 ‘쿠키 광고를 팬트 하우스나 플레이 보이 잡지에 싣는 것에 대한 홍보 부장의 변’이라든지 ‘쿠키 회사에서의 건강 관리사의 역할’같이 톡톡 튀는 대사가 드문드문 배치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말의 황제 우디 앨런의 명성을 굳게 믿고 극장을 찾은 관객이라면 조금 실망할 수도.

우디 앨런이 드림웍스와 손을 잡고 만든 첫 메이저 영화라는 <스몰 타임 크룩스>는 미국이나 프랑스 개봉 당시 흥행에는 일정 수준 성공했으나, 평에서는 엇갈렸다. 인간으로 돌아오는 소박한 심성을 지닌, 편안한 코미디로써는 만족스럽다.

1 )
ejin4rang
한번 봐야겠네요   
2008-10-16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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