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철도 999>를 기억하시는가. 일요일 아침이 되면 언제나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라는 노래와 함께 아침을 맞이했던 필자는 절대 그 만화를 잊을 수가 없다. 마치 각인이 되듯 그 둥글둥글한 특유의 캐릭터와 SF에 인간적인 감수성을 엮은 자아 찾기 여행담은 어린 마음에 불을 지르기에 충분한 아이템이었다. 그런 <은하철도 999>의 감독이었던 린타로가 신작 <메트로폴리스>를 발표한다고 하자 당연지사 기대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70년대에 이미 철학적이고 사색적이면서도 아름답고도 매력적인 애니메이션을 선보였던 그였기에 특별히 필자가 거는 기대는 하늘을 찌르고도 남음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 작품에는 오토모 가츠히로가 제작을 했는데, 이 이름이 일본 애니메이션의 걸작으로 꼽히는 <아키라>의 감독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거의 광분의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하지만 감탄은 여기까지다. 메트로폴리스라는 가상 네트워크 도시의 화려함에 반대되는 지하 세계의 대비를 통해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에 대해 풀어내던 스토리라인은 어느 순간 완벽한 초인 티마가 등장하면서 ‘과연 나는 누구인가’라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가 그간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수 차례 반복해 왔던 존재에 대한 물을 반복적으로 던진다. 거기에다 이미 너무나 많은 경험을 통해 습득해 왔던 인간적인 로봇과 기계적인 인간의 갈등 그리고 세계를 정복하려는 야욕과 인간관계가 얽혀 드는 특유의 복잡한 이야기 구조가 맞물리면서 영화는 지루하게 느껴지기 까지 한다. 처음에는 낯익어서 반갑다고 생각되었던 캐릭터들도 새롭게 화려한 옷을 입고 등장한 모습들이 보여지면 ‘아... 옛날이 더 좋았는데’하는 생각만을 갖게 만든다.
이야기를 한참이나 쫓아가려고 애를 써도 여전히 과장된 캐릭터들이 난무하고, 또한 그 사이에서 주인공들이 펼치는 의아스러운 로맨스가 겹쳐지자 ‘더 이상은 안돼’ 라며 고개를 설레 설레 흔들고 말았다. 그리고 대체 일본 아이들이 궁금해 하는 자아에 대한 물은 언제까지 혼자만의 독백으로 남아야 하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알고 싶어하는지 관객들에게 알 수 없는 숙제만을 남기고 영화는 유유히 막을 내리자 허탈한 감정이 물밀 듯 밀려들었다.
어차피 감독이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인지 확실히 받아들여지고, 또한 하려한 비주얼과 지금까지와는 다른 일본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지만, 이미 70년대에 한번 써먹었던 기계인간과 인간성의 회복이라는 이야기는 화려한 디지털 색감에 어울리지 못하고 각기 서로 다른 곳으로 표류하며 보는 이들의 머리 속에 정처 없이 부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