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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레옹’을 잠식한다?
와사비 : 레옹 파트 2 | 2003년 4월 9일 수요일 | 임지은 이메일

<레옹>의 속편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떠올리게 될 단상 몇 가지. 편의상 가상대화로 구성해 보기로 한다. A:“엇, 레옹은 죽었는데. 그 왜 수류탄 안전핀 쥐어주는 거 나오고... 자폭했었잖아.” B:“실은 살아있었던 거 아냐?” A:“거 재주 좋네. 우유의 힘인가? 그럼 그건 그렇다 치고 나탈리 포트만은 어째. 인제 다 커서 아미달라여왕 하고 있는데.” B:“다른 여자애를 쓰려나? 아니면 그냥 이름만 빌린 건가 보지. 여자 두 명 나오면 기냥 <바운드 2>되고 뭐 그런 거 아니냐.” A:“아냐, 뤽 베송 제작이고 장 르노도 출연하는데?” B:“어라, 그럼....” (후략)

말 그대로 “어라, 그럼...”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와사비>는 <레옹>과는 상관없는 영화. 아니 크레딧에 올라있는 뤽 베송과 장 르노의 이름은 둘째치더라도 <레옹>의 설정과 이미지를 곳곳에서 차용하고 있는 것이 대번에 눈에 들어오다 보니 아주 상관없다고 말하기도 곤란하다. 그런 맥락에서 다시 한 번 정리해본다면 <와사비: 레옹 파트2>는 <레옹>의 기억으로부터 파생된, 그러나 속편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부당한 또 하나의 영화쯤으로 정의 내리는 것이 개중 적절할 듯 싶다.

따라서 부녀간과 남녀간의 그것을 오가는 둘 사이의 절절한 애정도, 사내아이처럼 곧은 팔다리에 머리는 집에서 자른 듯한 단발이지만 어느 팜므파탈 보다 훨씬 더 섹시했던 마틸다도 영화 안에는 없다. 고독한 킬러 대신 형사로 돌아와 여전히(!) 현란한 사격 솜씨를 과시하는, 좀 더 나이든 장 르노가 있을 뿐이다. 한편 여주인공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비밀>과 <철도원>으로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히로스에 료코. 장 르노와 히로스에 료코라니, 고개를 갸웃할 분들을 위해 수순대로 이 둘이 만들어 가는 것이 과연 어떤 이야기인지 살펴볼 차례다.

파리의 강력계 형사 위베르(장 르노)는 유능하긴 하지만 못말리는 다혈질인 탓에 늘 문제를 일으키는 트러블 메이커. 하루는 은행강도를 소탕하던 와중 경찰서장 아들 얼굴에 펀치를 날리는 바람에 2개월의 정직을 선고받는다. 이리하여 남들은 못 얻어 안달인 휴가를 강제로 누리게(?) 된 그에게 먼 일본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전화기 너머에서는 일 밖에 모르는 위베르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자 미코의 죽음과 함께 그녀의 유품을 찾아가라는 소식이 전해져온다.

곧바로 도쿄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위베르는 그 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낯선 소녀 유미(히로스에 료코)를 만난다. 한편 미코의 죽음을 조사하던 위베르는 어느날 갑자기 종적을 감춰버렸던 그녀가 비밀 정보원이었으며 거액의 유산을 남겼다는 사실을 알고 당황하지만, 이 또한 그녀가 남긴 ‘또다른 유산’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이유인즉슨, 폭탄을 방불케 하는 위력의 좌충우돌 소녀 유미가 실은 위베르 자신의 딸이었기 때문. 그러나 미처 감동의 부녀 상봉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야쿠자가 그들의 뒤를 쫓기 시작한다.

여차저차 불평부터 늘어놓게 되었지만 <와사비: 레옹 파트 2>는 ‘재미없는’ 영화는 아니다. 느닷없이 시작하여 떨어뜨린 실타래처럼 사건이 스스륵 풀려나가 버리긴 하지만 뤽 베송 제작에 제라르 크라브지크(<택시>)가 메가폰을 잡은 영화답게 특유의 스타일리쉬함과 속도감만큼은 살아있기 때문. 적재적소에 배치된 에릭 세라의 음악은 박동수를 높이고, 드물잖게 웃음도 터져나온다. 거기 더해 스크린에서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히로스에 료코의 미모는 또한 이미 검증된 바가 아닌가. 물론 <와사비...>에서의 료코는 어머니와 딸을 동시에 연기했던 속 깊은 <비밀>의 히로인과는 전혀 다른, 오렌지빛 선명한 머리칼을 휘날리는 ‘예쁘고 신기한 동물’에 가깝지만 말이다.

이미 언급한 바대로 <와사비...>는 끊임없이 <레옹>의 기억의 잔영들을 가져다 덧입고자 한다. 후속편을 표방한 것은 물론 수입사의 전략이지만, 실은 영화 자체가 다분히 그런 혐의들을 내재하고 있다는 얘기. <레옹>에서 마틸다가 레옹을 위해 마릴린 먼로로, 채플린으로 변장하며 왠지 짠한 웃음을 선사했다면, 못 말리는 쇼핑광으로 묘사된 <와사비..>의 유미는 백화점에서 마치 주워담듯 사들인 옷을 하나하나 걸쳐 보이며 패션쇼를 펼친다. 마틸다와 레옹이 부녀와 남녀간을 넘나드는 절절한 사랑을 보여주었다면 <와사비...>의 히로스에 료코와 장 르노는 심플하기 그지없게도 액면 그대로의 ‘부녀 사이’로 등장한다. 레옹은 우유를 즐겼지만 형사 위베르는 사케(일본 청주)를 물처럼 마셔댄다.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그러나 아예 패러디를 표방하지 않은 바에야 고개를 끄덕여주고 싶지 않은 ‘변주’들.

한편 영화는 일본의 이국적인 정취에 매료된 듯 하지만, 정작 그 속을 깊이 들여다 볼 일말의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위베르를 오랫동안 사랑해 온 파리의 여자친구의 말 그대로(“난 일본 음식은 만들 줄 모르지만 진짜 사랑은 할 줄 알아.”) 매력적이고 독특하지만 속을 알 수 없는, 조금은 위험한.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와사비...>는 서구인들의 오리엔탈리즘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또 한 편의 영화에 다름 아니다. 하기야 ‘사랑하는 여인과 딸의 나라’에 대한 진지한 성찰 등속의 것들이 뜬금없이 튀어나왔다면 그 또한 불균형이었겠지만.

그러나 그런 종류의 납득의 시간을 거친 후에도 분노는 여전히 남는다. 불빛이 명멸하는 시부야의 오락실에서 벌어지는 마치 게임을 방불케 하는 총격전, 어머니의 죽음에 혼란스러워하는 막 스무살이 되려는 여자아이라기보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깜찍하고 예쁜 동물처럼 그려지는 유미. 와사비와 사케로 일본을 정의하는 꼭 그만큼의 얄팍함. <레옹>을 신성불가침의 자리에 올려놓을 마음 따윈 없지만, 스팅의 “Shape Of My Heart"가 흐를 때 쏟아져 나오던 눈물을 기억하고 있는 우리들은 그게 얄미운 것이다. 이것은 <레옹>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와사비: 레옹 파트2>가 짊어지고 가야 할 모종의 대가이자 숙명이기도 하다.

2 )
ejin4rang
레옹2료코때문에 봤다   
2008-10-16 14:50
js7keien
히로스에의 발랄함만 남는다   
2006-10-03 15:0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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