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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탄생을 찾아서
링 0 버스데이 | 2003년 4월 11일 금요일 | 박우진 이메일

<링0: 버스데이>는 <링>을 완결하는 동시에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링>의 탄생을 알리는 작품이다. 연대기적 차례를 훌쩍 거스르는 <링>시리즈의 이 특이한 구성은 어딘지 의미심장하다. 마지막이 처음으로 돌아가 시간의 흐름을 폐쇄하며 ‘끝없이 돌고 도는 저주’라는 영화의 내용을 실천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링>이 일본과 한국에서 동시에 만들어지고 얼마 전 미국에서 리메이크되었다는 점 역시 <링>의 제작 과정이 복제를 통해 전파되던 영화 속 저주를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충실히 실천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을 잠시 해본다.

<링0: 버스데이>의 시간적 배경은 1969년. TV에서 기어 나와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장본인, 우물 소녀 사다코가 낭랑 18세 된 해다. 굴러가는 낙엽만 보아도 까르르 웃어야 할 창창한 나이이건만 사다코의 얼굴에서는 도대체 웃음기를 찾아볼 수가 없다. 죽은 영혼이 보이는 탓에 정신과 치료까지 받아보나 별 효과를 얻지 못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다코는 어두운 과거에서 벗어나 배우로서의 새 삶을 시작하기 위해 극단에 입단한다. 그러나 불길한 기운은 그녀에게서 좀처럼 떨쳐지지 않고. 의도하지 않은 초능력이 자꾸만 사고를 일으키자 극단 단원들은 점점 그녀를 손가락질한다.

이 영화는 사다코를 재조명한다. 피도 눈물도 없이 철저하게 악의 화신처럼 보였던 사다코는 사실, 분열된 자아 때문에 괴로워하는 인간적인 존재이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에게 해를 입히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복수하는 무의식적 초능력이 그녀에게는 너무 버겁다. 단지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한 남자를 사랑하는 일조차 순순히 허락되지 않는다. 현실과 꿈, 실재와 환상을 교차하며 의지와 무의식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그녀의 내면을 짚어내려는 시도는 공포감을 더할 뿐 아니라 이 영화를 섬세한 심리 드라마로 만든다.

인간의 악한 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무섭고 슬프다. 지극히 정상적이었던 극단 단원들이 자신들의 일상을 위협하는 불길함에 과도한 폭력으로 대응하는 과정은 너무나 현실적이다. 빛으로 나온 사다코를 다시 어두운 우물 속으로 몰아가는 그들의 광기 어린 집단 린치는 다수의 안녕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소수를 억압하는 사회의 잔인한 행동과 다르지 않다. 억압된 것은 언젠가 귀환한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공포로써 잠재한다. 이제까지의 <링>시리즈가 사다코의 귀환이 인간의 잠재된 공포감을 극대화하여 죽음으로까지 몰아가는 무서운 광경을 보여줬다면 이 영화는 그에 못지 않게 무서운 억압의 광경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인간에 대한 비관적인 시선은 슬프다. 성악설을 대변하듯, 악의 정체는 영원히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검은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채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이 어린아이는 분리된 후에도 사다코의 주변을 그림자처럼 맴돈다. 악한 운명은 언뜻 언뜻 스쳐서 그 실체가 잘 파악되지 않음에도 강한 힘을 지니고 있어 삶을 개척하려 하는 인간의 실존적 의지를 가혹하게 좌절시킨다. 사다코 엄마의 한, 애인을 잃은 여기자의 복수심, 극단 단원들의 공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다코를 덮치며, 인간의 화를 겹겹이 등에 업은 그녀의 분노가 저주의 형태로 폭발하는 <링>의 설정을 설득력 있게 뒷받침한다.

이전의 <링>시리즈를 챙겨 본 관객이라면 이 저주의 탄생을 지켜보는 재미가 더욱 쏠쏠할 것 같다. 초기의 생략된 시간을 밝히는 영화인만큼 지난 작품들의 해설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사다코가 특이하게 걷는 이유, 사다코의 엄마가 미친 이유, 저주가 최초로 테이프에 녹음된 과정, 비디오 테이프에 염사된 장면의 실체 등등을 확인할 수 있다.

츠루다 노리오 감독은 빠른 편집을 활용, 동적인 화면을 구성하며 인물들의 심리를 따라간다. 정적인 화면에서의 여백의 공포보다는 꽉 짜여진 정교한 공포를 노린다. 인물들을 넘나드는 균형감 있는 연출과 이 모든 비극을 꿈이라고 믿고 싶은 관객의 마음을 어김없이 뒤집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 깊다.

1 )
ejin4rang
링제로 언제나 봐도 무섭다   
2008-10-16 14:4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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