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 케이블 영화채널 캐치온에서 5시즌을 방영하고 있는 <섹스 & 시티>는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그 자체로 하나의 트랜드를 이끄는 존재가 된 작품이다. 뉴욕, 직설적인 성담론, 그리고 뉴욕 전문직 여성들의 라이프 스타일과 화려한 패션. 여러 제약 때문에 이런 것을 다룰 수 없는 한국에서 <섹스 & 시티>는 ‘정신적인 뉴요커’가 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완벽한 구경거리였던 셈이다. 비록 뉴욕에서 살 수는 없을지라도 <섹스 & 시티>를 보면 그들의 의식과 라이프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섹스 & 시티>의 5시즌은 기존의 <섹스 & 시티> 시청자들에게는 조금은 당황스러운 시즌으로 기록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캐리(사라 제시카 파커), 사만다(킴 캐트럴), 샬롯(크리스틴 데이비스), 미란다(신시아 닉슨)는 여전히 멋진 옷을 입고, 열심히 일하며, 여러 남자들과 섹스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이전처럼 마냥 가볍게 연애하고 각자의 성생활에 대한 수다만을 떨 수 없는 때가 되었다. 이들도 이제 30대 초반의 안정된 전문직 여성에서 서서히 40대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고, 그들은 더 이상 매일 매일을 '트랜디‘하게만 살아갈 수는 없다. 언제나 쿨하게 살아갈 것만 같았던 그들도 자신의 삶의 방향을 세워야할 때가 된 것이다.
지난 4시즌에서 각각 결혼, 임신, 이혼 등의 문제를 겪고 다시 독립된 여성의
길을 택했던 이들은 이제 그에 대한 대가를 치루고, 또 한번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캐리는 높아만가는 칼럼니스트로서의 명성에 대한 불안감과 결혼의 속박대신 찾아온 고독함을 견뎌내야하고, 이혼을 선택한 샬롯은 ‘36살의 이혼녀’가 새로운 사랑을 찾기가 얼마나 힘든지 경험해야하며, 미란다는 일과 육아, 그리고 섹스를 조화시키는 방법을 배워나가야 한다. 사만다만이 유일하게 자신의 ‘좋았던 시절’을 유지하려 노력하지만, 대신 그녀는 피부관리를 위한 화학 필링으로 인해 캐리의 출판 기념회에서 망신을 당한다. 남자문제 말고는 거칠 것 없을 것 같았던 그들의 좋았던 시절은 흘러갔고, 남은 것은 ‘중년’을 보내기 위한 새로운 고민거리들이다. 그래서 직설적인 섹스 이야기를 즐기길 원한 시청자들은 이번 시즌에 조금 실망할 수도 있다. 스토리 자체에서 섹스를 그나마 맘놓고 즐길 수 있는 사람은 사만다 정도일 뿐이니까.
그러나, 이런 변화는 오히려 <섹스 & 시티>가 가진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주는 계기가 될 듯 싶다. 사실 <섹스 & 시티>의 강점은 섹스와 고급스런 뉴요커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주는데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작품의 진정한 강점은 잘 짜여진 각본과 네 명의 여성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에 있었다. 그저 웃기기만 할 수도 있는 30분 남짓 하는 에피소드에서 그 나이대 여성이 느낄 수 있는 일상의 부분들과 작은 잠언들을 하나씩 안겨주며 끝나는 멋진 마무리야말로 이 시리즈만이 가진 강력한 힘이었다. 특히 샬롯의 생일을 맞아 카지노로 여행을 떠나면서 각자의 고민과 우정의 문제를 해결하는 ’36번째 생일‘이나 일과 사랑의 문제에 있어 선택의 문제를 다룬 ’두 마리 토끼‘등은 <섹스 & 시티>의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잃지 않으면서도 보다 더 깊은 고민과 그만큼 더 진지한 해결책을 보여준 뛰어난 에피소드라 할만하다.
1,2시즌의 <섹스 & 시티>가 30대 여성의 성생활에 대한 사례집이었다면, 지금의 <섹스 & 시티>는 여성들을 위한 훌륭한 카운슬러같은 작품이다. ‘섹스’와 ‘시티’ 모두 여전하지만, 그녀들은 이제 그것 말고도 고민할 것들이 많다. ‘섹스 & 시티’는 그것을 회피하는 대신 그 변화를 받아들였고, 이것이 후반으로 갈수록 지지부진해지는 여느 TV 시리즈들과 달리 이 시리즈를 작품 속의 캐리처럼 계속 성장하는 시리즈로 만드는 힘이다. 세월의 무게를 받아들이는 TV 시리즈라니, 그거야말로 참 쿨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