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캐리 주연의 영화는 대부분 영락없는 ‘짐 캐리 영화’다. 그의 영화들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의 이름은 거론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독특한 캐릭터를 고스란히 끌고 들어와 영화를 추진하는 원동력으로 사용하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역할에 다른 배우를 대입하는 것은 거의 원칙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그만큼 짐 캐리의 위치는 고유하다. 자신이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으며 매 작품마다 그것을 극렬히 분출한다는 점에서 그는 영리한 배우이지만 그 한계 역시 명확하다. 그래서 우리는 짐 캐리의 영화를 선택할 때 일정한 기대와 체념을 먼저 갖는다.
서론이 길었지만 그의 신작 <브루스 올마이티> 역시 같은 맥락이다. 어쩌면 저렇게 정도를 걸을까 싶을 정도로 예측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감독과 짐 캐리가 주력하는 부분은 디테일한 부분, 개인적인 욕망이 앞서는 일개 인간이 신의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이다. 그리고 CG를 동원, 그런 장면을 시각적으로 매끈하게 다듬어 낸다.
여기, 어이없이 하루아침에 신의 지위에 오른 사내 브루스는 그 전지전능한 능력을 물론 얼씨구나 저를 위해 남발한다. 접시에 담긴 수프를 반으로 가르고 길을 가다 쇼윈도에 걸린 옷과 자신의 옷을 바꿔 입고 여자친구의 가슴을 뻥튀기 한다. 이런 아기자기한 장난들은 물론 재미있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이다. 하룻밤의 로맨틱 무드를 위해 창가로 끌어온 달 때문에 지구 반대편에서는 물난리가 나고 특종을 위해 떨어뜨린 운석으로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다. 자꾸만 귓가에 웅성거리는 기도 소리가 귀찮아 야훼(!) 사이트에서 모든 요구에 YES!로 답하도록 설정하니 모두가 행복하기는커녕 세상이 벌컥 뒤집힌다. 사소한 발상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
화제가 되었다는 '흑인' 하느님 모건 프리만이 조곤조곤 교훈을 일러주며 아버지 노릇을 하고, 여자 친구 역의 제니퍼 애니스톤은 일상의 소소함에 만족하며 행복을 느끼는 '바람직하고 인간적인' 삶을 몸소 보여준다. 물론 브루스가 큰 능력과 권력에는 그만큼의 의무와 책임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통감하고 제 분수에 맞는 삶으로 감사히 돌아간다는 해피 엔딩은 당연한 수순.
무엇보다도 하느님이 가장 강조하신 부분은 인간의 자유 의지였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정당한 경쟁과 타당한 절차를 통해서가 아닌 일방적으로 임명되는 앵커 자리를 더 이상 욕심 내지 않고 리포터로 만족하고 마는 브루스의 약한 모습은 오히려 운명론적인 결말로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는 듯 꺼림칙한 기분이 들지만 짐 캐리의 캐릭터가 지극히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가치를 뒤엎을 리는 만무하다. 모두의 바램이 이루어져서는 안 되듯 전체의 유지를 위해서 개개인은 아무리 불만스러워도 딱 제 역할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공고한 사회화를 위해 필요한 잠깐의 일탈, 위험하지 않은 재치와 아양. 짐 캐리의 브루스는 거기까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