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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위가 말하는 '바보같은 사랑'
화양연화 | 2000년 10월 20일 금요일 | 현시내 이메일

영화를 보는데 있어서 여러 가지 기준이 있겠지만, 감독의 입장에서 영화를 만든다면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80%, 좀 심하다 싶으면 99%를 넣는 영화이고, 다른 하나는 관객들을 영화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도록 관객을 위한 자리를 40% 마련할 수 있는 영화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왕가위 감독은 전자에 속한다. 솔직히 그의 작품중에서 중경삼림처럼 일주일만에 팝콘 튀기듯 나온 영화가 오히려 난 더 이해하기 쉬웠다. 많은 사람들이 왕가위 감독의 광팬이 되었지만, 여전히 나에게 있어서 왕가위 감독은 '고집불통 독불장군' 아니 '독불감독'일 뿐이었다. (물론 그 점이 매력이기도 했지만요..... 비굴비굴). 모두다 알다시피 왕가위 감독의 영화는 철저히 감독 중심적인 영화이다. 그의 작품에 출현했었던 그 유수한 배우들이 감독을 존경하기는 해도 그와의 작업이 제일 힘들다고 하는 것처럼, 그의 영화는 '감독의 영화'이다. 그러한 영화의 코드가 어쩌다 관객들과 맞으면 뜨는 거지만, 그 코드가 너무 개이적일 때는 외면당하기 마련이다. 중경삼림의 얼풍을 등에 업고 개봉한 [동사서독]이나 그외 다수의 영화가 '구하기 힘든 비디오'로 전락한 이유가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었다.

길고 지루한 서론을 접고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화양연화'가 성공한 이유는 그렇다면 무엇일까? - 물론 아직 개봉전이라 관객동원수는 알수 없지만, 그 외의 요인, 즉 세계 여러곳에서 호평을 받고 상을 받은 것을 굳이 성공으로 보자면 말입니다. - 자칭 영화매니아인 나는 이 영화의 성공 요인은 위에서 언급했던 감독과 관객의 영화가 바로 화양연화로 완성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100이라는 영화의 공간을 왕가위는 감독의 자리 80, 그리고 관객의 자리 40, 총합 120으로 확장시켰던 것이다. 오랜시간 감독의 영화 하나로 고군분투한 그의 삶이 승리한 것이다. 다른 왕가위 감독의 영화와 달리 나는 [화양연화]에서 쉽게 나의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푹신하고 안락한 나의 자리에서 리춘(장만옥 분)과 차우(양조위 분)을 통해 왕가위 감독과 이야기 할 수 있었다. 그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그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란, 그가 생각하는 아픔이란 무엇인지, 영화를 보고나니 난 이제 왕가위 감독의 팬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나에게 말해준 '화양연화'의 비밀은 무엇일까? 솔직히 공짜로 그 소중한 밀담을 나눠주긴 아깝지만 조금만 내어준다면, 왕가위 감독은 이 영화를 보는 이로 하여금 '넌 저런 사랑 하지 마라!' 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빛깔은 화려하지만 공허한 화면, 그리고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장악하는 끈적끈적한 라틴 음악의 선율만으로는 이 영화가 아름다운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라 가슴이 설레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화려함의 가운데에 있는 리춘(장만옥 분)과 차우(양조위 분)의 사랑은 가슴아프다 못해 답답할 지경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서로 배우자 - 비록 바람은 났지만 - 가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영화내내 한번도 얼굴 보이지 않는 배우자들이 뭐가 중요했겠는가. 그 만큼 감독은 그들의 배우자라는 구속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열쒸미 설명하였다. 하지만 정작 답답한 것은 당사자들이 서로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아서 서로를 피해갔다는 것이다. 뭐 설정이 서로 아쉽게 스쳐지나간다거나 아깝게 놓친다지만 결국은 따지고 보면 서로를 피해간 것이나 다름없다. 서로 사랑하는 건 알지만, 이미 한번 받은 상처를 다시 받고 싶지는 않았기에 서로를 피해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바보같은 사랑'이다.

왕가위 감독은 나에게 말했다. "만약 니가 정말 사랑을 느꼈다면, 연습을 하려하지 말고 그냥 니 모두를 걸어버리라고! 그래, 니 삶을 걸어볼 만한 인생 최고의 도박 아니겠어!" 왕가위 감독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 때 알았다. 자신의 치부를 드러냄에 있어서의 저 솔직함과 당당함으로 인해 그 영화를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이들의 사랑만큼은 정말 순수하고 지고지순한 사랑이라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내가 느낀 것은 '상처를 두려워 하는 바보같은 짓은 두 번 다시 하지 말아야지'라고 외치는 감독의 자책감이었다. 그리고 내가 자리를 찾은 곳도 바로 그러한 감독의 가슴아픈 틈새였다. 나 뿐만이 아니라 이 영화를 보는 이들은 영화를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낀다면 어렵지 않게 이 틈새로 기어들어가 왕가위 감독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시사회장에서 나가는 왕가위 감독의 손을 잡았을 때, 그의 손은 너무나도 평범했고 또 따듯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정말 화양연화에 깊이 깊이 빠져들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색다른 경험을, 그리고 나의 아픔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준 화양연화와 난 지금부터 새로운 사랑의 방법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3 )
ejin4rang
아름다운 영화   
2008-11-12 09:35
rudesunny
기대됩니다.   
2008-01-14 14:07
ldk209
이쁘고 .. 아름다운 영화....   
2007-01-29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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