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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 꿈꿔본 동화 같은 이야기
| 2003년 9월 4일 목요일 | 모구리 이메일

친구야, 안녕. 요즘 사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구나. 취업은 취업대로 안 되고 있구, 그렇다고 취업 공부가 제대로 되는 것도 아니야. 아르바이트로 근근히 살아가고 있는데 정말 언제까지 이렇게 암담하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 어렸을 때는 어른 됐으면 하고 그렇게나 원했었는데, 막상 어른 되도 잘 되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 답답하다. 괜한 푸념인가?

얼마 전에 집에서 종일 있는 게 지루해서 비디오 가게 갔다가 <빅>을 빌려봤어. 예전에 봤던 거 또 보는 성격 아니지만, 왠지 그 날은 그게 보고 싶더라고. 너도 <빅>, 알지? 톰 행크스 한창 젊었을 때, 머리 좀 덜 까져 가지고 귀여웠을 적에 찍은 영화 말이야. 어린 애가 무슨 소원 들어주는 기계에 소원 빌었다가 어른 되는 영화인데… 그 애가 완구 회사에 취직해서 좋은 아이디어 막 얘기하고, 사장님은 엄청 흐뭇해하고… 이제 기억 나니?

근데 또 봐도 볼 만 하더라. 특히 그 사장님이랑 죽이 짝짝 맞을 때는 나도 모르게 웃게 되더라고. 그 유명한 장면 알지? 사장님이랑 둘이서 발로 커다란 건반을 밟으며 연주하던 장면! 예전에 그거 보고 나도 그 건반으로 연주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야. 아, 또 그 부분도 재밌어. 건물이 로봇으로 변하는 새로운 완구에 대해서 회의를 하는데, 겉만 어른인 조수아가 자꾸 이해 안 된다고 손들고는 그게 뭐가 좋으냐, 차라리 곤충이 로봇으로 변하면 더 재밌을 거다 하니까 사람들이 다들 동의하고, 훌륭하다고 말하는 장면 말이야. 하긴 애가 마음에 들어 하는 완구가 진짜 좋은 완구 아니겠어? 요즘 사는 게 시원치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조수아가 완구 회사에서 잘 나가니깐 내가 기분이 다 좋더라구.

톰 행크스는 정말 대단한 배우인 것 같아. 다 큰 어른이 아이 같은 눈을 가지고 연기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 지금은 살도 찌고, 머리도 더 벗겨져서 완전 아저씬데. 하긴 이 영화가 미국에서 개봉한 지 벌써 15년이나 지났으니, 톰 행크스의 모습에서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질 법도 하지.

아, 그리고 이 영화 만든 감독 말이야, 좋은 영화 많이 만들었더라. 페니 마샬 감독이라고… 영화 좋아하는 너는 알 것 같기도 하다만, 그 감독이 <사랑의 기적>이랑 <그들만의 리그> 또 <라이딩 위드 보이즈> 같은 작품을 만들었더라고. 이 감독님, 엄청 낭만적인 사람일 것 같아, 그지? 음악을 담당한 하워드 쇼어도 되게 유명한 사람이던걸. 내가 원래 음악 애호가잖아… 뭐, 아니라고 하면 할 말 없다만 어쨌든 하워드 쇼어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건 너도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거다. 지금까지 음악을 담당했던 영화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는 못하겠는데 작년에 <반지의 제왕>으로 아카데미 음악상 탔다는 건 상식으로 알고 있으라구.

친구야, 우리가 만난지도 이제 20년이 가까워오는구나. 우리, 어렸을 때는 왜 그렇게도 어른이 되고 싶었던 걸까? 아마, 어른이 되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겠지. 괜히 커다란 아빠 구두도 신어보고, 어려운 책을 읽으려고 애쓰기도 했지.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른이 된 우리는 잃은 것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다. 제일 아쉬운 건 순수함을 잃고 있다는 거지. <빅>을 보고 나니까 순수한 마음으로 보는 세상이 더 넓다는 것을 알 것 같아. 잘 지내고 연락 좀 해라. 언제 영화 한 편 같이 보자. 그럼 이만!

3 )
naredfoxx
ㅇㅇ 인상깊은 영화;; 마지막 꼬마 모습이 떠오르네요. 콜라자판기 저두 진짜 갖고 싶었음 ㅋㅋ   
2010-01-01 20:25
ejin4rang
굉장히 잘만들어진 영화   
2008-10-16 09:46
ldk209
어린아이들의 정서를 잘 어루만진.....영화,..   
2007-01-22 10:1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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