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알려진 사실이지만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는 디즈니랜드의 놀이기구로부터 착안한 영화. 만화 속 수퍼 히어로들을 줄기차게 소환해내기도 모자라 이젠 놀이기구까지? 기억을 더듬어보면, 놀이동산에서 모티브를 따온 영화가 이게 처음은 아니었다. 2002년 여름시즌에는 디즈니 테마 파크에서 인기를 얻었던 곰 캐릭터에서 착안한 가족영화 <컨트리 베어즈>가 개봉했지만, 첫 주 6위를 차지하는 그저 그런 성적을 거뒀다.
한편 해적영화에 얽힌 모종의 징크스에 대해서도 알만한 분은 다 알고 계실 터. 불보다 물이 무섭다고 했던가. 레니 할린의 <컷스로트 아일랜드>나 로만 폴란스키가 7년만에 내놓았던 재기작 <대해적> 같은 값비싼 해적영화들이 수몰이라도 당한 듯 일제히 참패하고 난 후, “해적을 다룬 영화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설은 마치 하나의 불문율처럼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놀이기구에서 착안한 해적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은 어떨까?
물론 영화의 방점은, 혹은 1억 2천 5백만 달러 짜리 블록버스터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관객들의 기대치는 줄거리에 있지 않다. 영화의 상상력에 놀이기구의 스릴을 더한 공감각적 즐거움, 거기에 더해 ‘해적’이라는 카리스마적인 캐릭터를 어떻게 살려내느냐는 것이 가장 주요한 관건. 우선 후자에 대해 논하자면, 거의 만장일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마치 열광과 손가락질을 동시에 받는 현대의 록스타를 그대로 선상에 옮겨놓은 것 같은 조니 뎁 표 해적의 매력이 너무도 탁월한 탓. (실제로 그는 해적들이야말로 오늘날의 스타와 비슷한 존재고, 잭 스패로우를 연기하는 데 있어서는 그 중에서도 롤링 스톤스의 키스 리차드를 역할 모델로 삼았다고 밝힌 바 있다.)
사실 해적은 부인의 여지없는 범법자이며, 잔인한 악당이지만 감독 고어 버빈스키의 말마따나 빵 하나를 훔친 죄로 참수되는 인간성 몰살의 시대에 있어서는 자유의 표상이자 영웅일 수 있다. 조니 뎁이 연기한 잭 스패로우는 해적에 대한, 주로 소년들의 환상-아마 배우 자신도 어릴 적에 품어보았을-을 충실하게 살려내되 거기에 풍부한 유머를 첨가한다. 물론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는 무난히 잘 만들어진 전형적인 오락영화지만, 관객은 적어도 허허실실 자유인 잭 스패로우에게 집중하는 동안만큼은 심술궂은 해방감과 전복의 즐거움을 맛본다. 제리 브룩하이머가 제작한 1억 2천만 달러 짜리 블록버스터에서 전복의 즐거움이라니! 그런 의미에서 <캐리비안의 해적...>의 첫째 힘은 캐스팅이다.
물론 설정상 주인공에 비해 시선이 덜가는 편이기는 하지만, 제프리 러쉬가 노련하게 연기해낸 캡틴 바르보사는 잭 스패로우와 좋은 앙상블을 이룬다. 똑같이 괴상하고 비슷하게 가련한 두 사람, 선악은 단지 보는 사람의 시각 혹은 편의에 따른 임의적인 구분에 있을 뿐이다. 이처럼 자칫하면 다른 해적영화들과 함께 수몰되는 운명에 처할 수도 있었던 영화가 끝까지 귀여운 기발함을 견지하는 것은 두 캐릭터가 영화를 지지해주는 힘이 탄탄하기 때문. 한편 윌을 연기한 올란도 블룸이나 엘리자베스 역의 키라 나이틀리는 지저분한 해적들과 명확히 대조되는 화사하고 단정한 외모로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연기 면에서는 그저 평이한 수준이지만, 어찌보면 바로 그것이 이들의 자리이기도 했을 것.
<마우스 헌트>와 <링>을 감독했던 고어 버빈스키는 각각 코미디와 호러 장르였던 전작 두 편이 담고 있는 코믹함과 스산함을 <캐리비안의 해적...> 안에 잘 버무려 넣었다. 한편 <슈렉>의 작가 테드 엘리엇과 테리 로지오가 쓴 시나리오에서 톡톡 튀는 귀여운 유머들이 도드라지리라는 점은 예상하기 어렵지 않을 것. 후반으로 가면서 늘어지는 감이 있어 러닝타임(143분)이 다소 길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그리 큰 흠이 되지는 않는다.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는 말하자면 맛있는 것만 요것저것 골라 넣은 때깔 좋은 초콜릿 상자 같다. 물론 우리는 영양가 때문에 초콜릿을 먹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혀 나쁠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