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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이혼 전문변호사 마일즈(조지 클루니)와 결혼과 이혼으로 한밑천 잡아보려는 마릴린(캐서린 제타 존스)의 사랑이야기다. 돈 많은 상대를 골라 한밑천 잡고 헤어지려는 건 동서고금은 물론 남녀를 막론하고 한번쯤 꿈꿔 봄직한 바람이다. 마릴린은 결혼 몇 년만에 드디어 고대하던 남편의 외도 현장을 포착하고 쾌재를 부르면서도 증언대에 나가서는 사랑의 상처에 대해 늘어놓으며 애처로운 눈물을 흘린다. 이제 막 인생역전을 맞이하려는 순간 마일즈라는 장애물을 만난다. 마일즈는 계속 되는 승소에 기계적으로 맡은 단순한 사건에 눈을 번득인다.
그건 바로 자신이 꺾어야 하는 마릴린이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두 사람의 로맨스가 피어나려나 싶은 순간 영화는 마릴린의 참담한 패배로 몰고 간다. 사랑이 아니라 애초에 남편의 돈만을 노린 결혼이었음을 마일즈가 밝혀 냄으로써 마릴린은 땡전한푼 받지 못하고 이혼녀로 전락한 것이다. 사랑이 원수로 돌변하는 순간이다. 도대체 코엔 형제는 어떻게 두 사람의 사랑을 만들어나갈까 궁금해지기 시작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또 한편으로 영화는 마릴린의 복수극이다. 자신은 돈 많은 남자 등쳐먹는 게 꿈이라고 당당하게 얘기하는 캐서린 제타 존스의 얼굴에는 팜므파탈의 기질이 엿보인다. 이어 진정한 사랑을 증명해 보이겠다며 다시 마일즈의 사무실에 돈 많은 남자를 데리고 나타난 마릴린. 이런 결혼과 이혼의 반복되는 현상들. 이건 분명 우리 정서에는 먼 미국식 사고방식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 맘 편히 웃을 수 있는지 모른다. 우리의 현실과는 먼 미국의 일이기에. 마릴린은 이 남자와 헤어져도 재산은 넘보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당당하게 마일즈에게 제출하고 결혼식장으로 향한다. 마일즈는 뒤늦게 자신의 감정을 고백하며 자신에게 오라고 설득한다. 그토록 냉정한 판단으로 매번 승소하던 마일즈라도 사랑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 기고만장해 하는 마릴린의 웃음 뒤에 숨겨진 복수의 칼을 읽지 못했으니 이제 마일즈의 추락만 남았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우리 선조들의 말을 코엔 형제가 그대로 풀어놓는 시간이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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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화가 중반을 넘어설 때까지도 마일즈와 마릴린의 사랑은 중심으로 나서지 않고 주변을 배회할 뿐이다. 그동안 다른 사랑이야기가 집중적으로 두 사람의 사랑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과는 사뭇 다르게 이 커플의 사랑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주변을 몇 바퀴 돌다보면 어쩔 수 없이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사랑이 거기 놓여있다.
그동안도 그랬거니와 코엔 형제는 이번에도 돈과 인간의 관계에 집착한다. 전작들은 삭막한 풍경을 배경으로 해 뒷맛이 씁쓸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지 클루니와 캐서린 제타 존스를 뒷받침하는 화려한 상류 사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로맨틱 코미디로 풀어간다는 점에서 좀더 대중에게 다가선다. 물론 코엔 형제를 사랑하는 팬들로서는 좀 불만족스러울 것이다. 로맨틱 코미디의 한계는 역시 할리우드 적 결말에 있다. 그래서 끝까지 코엔 형제의 의표를 찌르는 재미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그래도 여전히 매력적인 건 이런 로맨틱 코미디에 그들만의 세상 비틀기가 계속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로맨틱 코미디 못지 않은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있다. 그동안 코엔 형제의 영화를 보며 낄낄거렸던 그런 웃음이 아니라 정말 맑고 깨끗한 웃음. 사랑으로 충만해질 수 있는 그런 순간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