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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급한 일반화야 말로 필자가 가장 혐오하는 일이지만, <프렌치 아메리칸>을 보고 나니 ‘정말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체념에 가까운 믿음이 생겨났다. 사랑의 속성이 ‘지속’과 ‘영원’이라고? 멀게는 <러브스토리>부터 가까이는 <국화꽃 향기>까지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여준 무수한 영화들이 주마등같이 머릿속을 스쳐가지만, 필자는 아무래도 사랑의 쓸쓸함을 믿는 쪽이다.
얼핏 보면 말랑말랑한 영화 <프렌치 아메리칸>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이러한 우울한 사랑의 단면들을 가볍지 않게 응시하고 있다. 젊고 발랄한 미국 여성 이사벨(케이트 허드슨)은 둘째 아이를 임신한 언니 록시(나오미 왓츠)를 돌봐주기 위해 파리로 향한다. 파리에 도착해 보니 형부는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져 도망치듯 집을 떠나가던 찰나였고, 나중엔 이혼과 함께 재산분할까지 강요한다. 이러한 내막에는 록시가 결혼할 때 미국에서 가져온 그림 한 점이 중세 시대의 유명 화가가 그린 진품이었기 때문. 록시가 이로 인해 남편을 비롯한 시댁 식구들과 복잡하고 지루한 이혼 소송에 얽매이는 동안, 이사벨은 재력을 갖춘 외교관이자 형부의 삼촌인 에드가와 연애를 시작한다. 고가의 명품인 에르메스 켈리 핸드백을 선물로 덥썩 안기는가 하면, 전망 좋은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맛좋은 프랑스 요리를 선사하는 달콤한 연인 에드가.
하지만 그림 소유권을 둘러싸고 록시의 프랑스 시댁과 미국의 친정 식구들 간에는 일대 마찰이 빚어지고, 설상가상으로 이사벨과 에드가의 밀애 사실이 양가에 밝혀진다. 고민하는 이사벨에게 에드가는 작별을 의미하는 마지막 선물을 전한다. 다이안 존슨의 베스트 셀러를 원작으로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전망좋은 방>)이 연출한 <프렌치 아메리칸>은 두 자매의 각기 다른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프랑스와 미국의 서로 다른 문화적 특징과 기질을 위트있게 담아내고 있는 영화다. 물론 미국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은근한 프랑스 꼬집기가 우세하다. 예를 들어 “프랑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불행에 신경쓰지 않아.”라는 대사라든가 겉으로는 우아하게 행동하면서 속으로 이득을 챙기는 프랑스 사람들을 보여주는 장면들은 군데군데 칼날같은 비판의 촉수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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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말처럼 ‘사랑’이란 오히려 처음의 감정을 잊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이 더 큰 해악일지 모른다. 상대에게 그것을 강요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사랑이란 자기만의 환상과 욕망을 특정한 대상에게 쏟아부으면서 생성되는 것이기 때문. 모든 사랑은 결국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욕망을 얼마나 고결하고 우아하고 신성한 것으로 치장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프랑스 남자들에게 있는 것만도 아니다. 좋게 말하면 그들만큼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사람들도 없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버림받는 입장에선 분명 그들은 야속한 사람들이고, 그러한 애증을 견디지 못해 극단으로 치닫게 되기도 한다. 눈치채셨을지 모르겠지만, <프렌치 아메리칸>이 마련하고 있는 무시무시한 반전의 힌트도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