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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가 사랑하는 '페이첵'의 원작자 필립.K.딕
미국의 예언자 필립.K.딕 | 2004년 1월 7일 수요일 | 협객 이메일

필립.K.딕
필립.K.딕
감독 오우삼, 주연 벤 에플릭 우마 서먼 이라는 막강 스타 시스템으로 흥행 기대를 모으고 있는 <페이첵>이 곧 개봉한다.

특히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은 배우들의 화려함이 아닌 감독 오우삼 일 것이다.
그만의 독특한 동양적 액션 스타일로 할리우드에 가장 안정적으로 안착한 감독 오우삼이, 가장 미국적인 장르 SF를 들고 온 것에 대한 이질감에 의해 영화 <페이첵>은 더욱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페이첵> 광고 전단지에 자랑스레 쓰여져 있는 “<마이너리티 리포트> 필립 K. 딕 원작”이라는 문구를 눈여겨본 관객들이 있다면 헐리웃 주류 영화사들이 필립 K. 딕의 작품을 영화화시키는 것을 왜 이리 좋아할까? 라는 약간의 호기심이 생길지도 모른다.

영화의 화려함에 한국 관객들의 관심의 대상에서 종종 가려지는 SF 소설의 대가 필립K. 딕(1928~1982 시카고 태생)은 죽음으로써 더 많은 매니아 층을 확보한 독특한 이력의 작가이다. 딕의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가 리들리 스콧 감독에 의해 1982년 <블레이드 러너>로 영화화되면서 “미래 세계에 대한 개연성 있는 허구”를 제시했다는 재평가에 의해 미국이 아닌 일본, 유럽 등지에서 그의 작가주의를 앞서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할리우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적 소재를 제시한 딕에 대한 평가가 늦게 이루어진 것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것도 미국이 아닌 타국에서 그에 대한 관심이 조직적으로 생성되었다니 궁금증이 더해질 수밖에 없다.

먼저 관객들이 본의 아니게 착각하고 있는 부분을 말해보자면, 딕의 원작 소설을 각색한 영화는 <블레이드 러너>외에 폴 버호벤의 <토탈리콜>, 스티븐 스필버그의 <마이너리티 리포트>등 다수의 작품들이 냉전시대로 상징된 1950년대에 쓰여졌다는 사실을 모르는 데서 오는 착각에 있다.

영화적 기술들이 우리보다 한 세기는 앞서가는 헐리우드 시스템이 선택한 소재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가장 암울했던 시기라 할 수 있는 미국의 냉전시대라니 핀대가 어긋나도 한참 어긋나 보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착각에서 오는 오류와 소설에 의거한 결과물들은 많은 문학(영화)평론가, SF매니아 등에서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는데 그 중 가장 설득력 있게 내린 결론이 딕의 개인적 삶의 미래적 반영이라는 문학적 평이다.

리플리컨트를 쫓는 특수경찰 '블레이드 러너'의 데커드
리플리컨트를 쫓는 특수경찰 '블레이드 러너'의 데커드
하지만 “개인적 삶의 미래적 반영”은 어찌 보면 너무 좁은 의미로 그를 논한 오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리들리 스콧이 만든 <블레이드 러너>에 내린 평만 보더라도 ‘사이버 펑크 영화의 선도’, ‘포스트모던 영화의 효시’, ‘Sci-fi 필름 느와르’ 등등 다양한 수식어가 제목 앞에 붙어 있다. 단지 그의 소설이 영화적 소재로서의 기능만 했다면 이 화려한 영화적 언어들의 격찬들이 리들리 스콧에게만 쏟아지는 찬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수식어들은 동시에 딕에게 쏟아진 환호였으며 그의 작품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이제야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핀대가 어긋나 보이는 시대적 차이에서 오는 오류와 개인적 삶의 반영이라는 리얼리즘의 평가만으로는 그의 작품들이 왜 이렇게 할리우드부터 인터넷 매니아 층까지 다양하게 사랑 받는지 그 이유에 대한 정확한 답을 끌어내지 못한다. 이건 불우한 개인적 삶을 살았던 필립K.딕이 현실에서 타협점을 못 찾은 것과 같은 삶의 진실에 대한 배고픔처럼 필자에게 밀려드는 첫 번째 의문이 되었다.

딕의 소설은 매우 공통된 주제로 일관하고 있다.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으로 함축되고 있는 그의 소설의 주제들은 인간 스스로 끊임없는 자의식에 대한 의심으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이 주제는 많은 의미를 함축하기에 누가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이해의 차이를 우리에게 남기기에 주제의 하위범주를 추론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필립K.딕 개인적 삶의 반영으로 본 소설과 영화

딕은 이란성 쌍둥이로 1928년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
하지만 그의 쌍둥이 누이는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고 그 일에 대한 충격으로 그는 어머니를 원망했다고 한다. 그는 정규 교육을 끝마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레코드 가게 운영. 라디오 방송국의 음악 프로그램 담당 등 다양한 이력을 소유한 사람이다.
또한 대단한 독서광이었던 그는 1952년부터 단편 < Beyond Lies the Wub >을 발표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비주류 문화라고 알려진 SF소설로 점차 명성을 드높였다.

또한 알려진 대로 그는 강박증 환자에 약물중독자였고 여러 번의 이혼으로 상당히 불안한 심리상태를 가진 편집광이었다. 결코 순탄치 않는 그의 삶들은 소설에서 인조인간, 핵전쟁, 인간에 대한 불신 같은 클리셰한 소재들로 표현되면서 현실에 근거한 미래 사회 구축이라는 평을 받았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블레이드 러너'의 안드로이드 로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블레이드 러너'의 안드로이드 로이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영화 블레이드러너의 원작 소설)의 주인공 데커드(블레이너 러너)도 영화와는 달리 원작 소설에는 아내 아이란이 있다. 이 작품에서 보면 데커드와 아이란의 부부사이는 현실의 딕과 같이 그리 원만하지 않게 그려지고 있다.

암울한 일상의 삶을 묘사한 데커드와 아이란이 논쟁을 벌이는 장면에서 딕은 가장 가까워야 할 아내와 남편의 관계마저 의미 없이 영위하는 미래 세계로 묘사한다. 미래의 삶조차 유토피아적 모형의 제시가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 현실을 반영한 이런 표현과 장치들은 본인 스스로 자신을 불신하는 인간의 이중성으로 확대돼 해석되어 진다. 이런 점이 영화 <블레이드러너>에서 더 인간 같은 고뇌를 하는 안드로이드 로이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이렇듯 딕의 개인적 불신감의 체험들은 고스란히 소설에 투영되어 그의 작품은 시종일관 어둡고 음산하며 암울하다.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에서 본 필립K.딕의 작품

지금은 그의 작품들이 여러 편 영화화되면서 SF소설에 대한 평가가 새롭게 매겨지고 있다.
그러나 딕의 명성조차 사후에 이루어졌다는 것만 봐도 SF 장르에 대한 문학적 평가의 부당성이 엿보인다.(메리셜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이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다)

SF 장르는 과학적 논리에 고립된 일부 매니아들이 과학잡지에 연재하면서 그 분야의 특별한 관심이나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의 펄프픽션으로 취급받았다. 즉, 주류 문학이 아니라 재미 삼아 보는 과학적 근거에 의존해서 허무맹랑한 상상으로 표현된 그럴듯한 미래 사회를 그린 싸구려 소설이라는 평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이 대중문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면서 SF소설들이 영화와의 만남을 통해 작가의 삶과 작품이 재조명되는 전과는 다른 문학적 평가를 받기 시작한다. 딕도 그와 동시에 새로운 평가를 받는데 그가 미국대공황(1930년대)을 겪은 세대라는 점과 그의 언어들이 그 당시 미국 사회를 반영한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문체와 필름 느와르 영화들의 불안한 심리를 표현했던 장치들을 고스란히 소설에서 쓰고 있음이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이것은 딕의 소설의 배경이 단지 미래일 뿐 그의 문체는 주류문학의 문체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았음을 상징한다.

그의 사상은 펄프픽션으로 대변되는 자유로움이었고 문체의 스타일과 반미래적인 일상의 사물에 대한 표현은 그 당시 사회를 반영했던 텍스트였다. 딕의 소설은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에서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완성됐으며 SF로 상징되는 과학적 근거보다 인간내면의 불안심리를 표현한 리얼리즘에 입각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성격을 가진 작품들로 평가되고 있다.

딕의 소설에서 그려지는 인물들은 필름 느와르의 영향으로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에서처럼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지만 결코 현실을 개선하지 못하는 반영웅적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소설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앤더튼처럼 시스템의 모순을 발견하지만 되려 더 내면의 자아에 대한 고민으로 휩싸이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시니컬한 언어와 건조한 묘사들로 대변되는 딕의 소설은 주류와 비주류의 관점에서 본다면 개인적 삶의 미래적 반영이라는 평가로는 무언가 모순되는 점이 발견된다. 그의 소설들은 개인적 삶을 떠나서 문학과 시대적 상황에서 더 많은 영향을 받았고 그것을 미래사회라는 소재로 표현했다는 해석이 나와야 맞을 듯하다.

'토탈리콜'
'토탈리콜'
필립K.딕의 인물로 본 소설과 영화

위에 열거한 대로 딕의 개인적 삶과 문학적인 재조명이 이루어지면서 그의 소설은 하나의 주류 장르로 인정받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비단 그의 작품뿐만 아니라 모든 SF소설들이) 이런 그의 소설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은 그가 표현한 인물들에 대한 재해석으로 소설의 가치를 더 높이고 있다.

필립K.딕은 기억이라는 모토로 많은 소설을 썼는데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부터 [기억을 도매가로 팝니다](영화[토탈리콜]의 원작소설), [두번째 변종], [사기꾼 로봇]등 등의 여러 소설에서 기억의 아이러니를 차용하고 있다. 기억의 허구를 체험하는 인물들이 대부분 남성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 본다면 딕이 표현한 남성상은 미국내 전통 내에 있는 남성상의 해체라는 사실에 있다. 현실 자체가 더 이상 그들에게 존재로서의 자리를 내어 주지 않는 1950년대 미국내의 상황이 소설에서는 기억이라는 모토를 이용하여 실재하는가 아닌가에 대한 자아의 물음으로 대체된다.

이것을 영웅으로 묘사된 남성이 아닌 평범한 인간이 존재론적 위기 상황에 처한 모습으로 그려냄으로써 현실에 가까운 미국 남성을 모방하고 있다. 그와 반대로 여성은 상당히 불안전한 모습으로 표현된다. 필립K.딕의 개인적 경험의 소산일 수도 있지만 여성은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으로 많이 그려진다.

[두번째 변종]에서 인간을 죽이는 갈고리밥톱(인간들이 만든 살인머신)이 자체 설계 생산함으로써 자신들의 새로운 변종을 만드는데 그 두번째 변종이 바로 타소라는 여성의 형태로 생산된다. 또한 영화 [토탈리콜]의 로라(샤론스톤) 그리고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의 데커트의 아내 아이란 역시 딕의 그려내는 남성상과는 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는 각색되었지만 앤더튼의 아내인 리사도 불완전한 관계로 묘사된다. 프리크라임 시스템에서 나온 예언을 믿고 남편을 제거하려는 리사의 모습은 딕에 작품세계의 상징적 여성상이 될 것이다.

이것은 느와르의 형식에서 영향받은 작가가 만든 새로운 팜므파탈 여성상이다.
딕의 소설에서 여성은 남성의 존재를 부정하는 입장 또는 현재의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파괴하는 위치에 있다. 그러나 이번 오우삼의 영화 [페이첵]에서는 필립K.딕의 상징적 남성상은 벤 에플릭을 통해 잘 표현된 반면 상대역인 우마 서먼의 레이첼은 다소 약하게 표현되지 않나 싶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마이너리티 리포트'
이렇게 개인적인 삶부터 인물의 묘사까지 본다면 필립K.딕은 미래라는 소설의 배경을 이용해서 자신의 경험과 사회적 변화들을 글로서 반영한 주류 문학 소설가의 성격이 강하다.
광기로까지 해석되어지는 필립K.딕의 소설을 읽다보면 위에서 말했듯이 강박증에 시달리는 자신의 모습을 소설에 많이 투영했는데 [스위블], [고소공포증에 시달리는 사나이]를 보면 그가 경험한 실제의 사건들이 내면적으로 그를 얼마나 괴롭히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작가를 포함한 그 시대로 시선을 확장해서 본다면 개인적 경험들로 평가되는 딕의 언어들은 미국내의 시민들이 대부분 경험한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은유적 표현들이다.

영화화된 그의 대표작을 들쳐보면 하나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와 [기억을 도매가로 팝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미래 사회는 테크놀로지의 구현에 의한 심한 빈부의 차이로 묘사된다. 높이를 헤아릴 수 없는 고층 건물과 소비 시대의 산물인 대형 광고물의 밑에 기거하는 지구인들의 모습은 대조적으로 처참하게 그려진다.

안드로이드를 생산하는 회사가 전 사회의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인간들을 통제하는 시스템을 묘사한 <블레이드 러너> 그리고 인간의 기억을 조정하는 메카니즘이 실현되는 [토탈리콜], [페이첵], 마지막으로 프리크라임이라는 예언 시스템으로 인간을 통제하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미래 미국의 모습은 딕이 당시 처한 사회적 모습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1950년대 미국은 한국의 6.25전쟁 등으로 공산주의에 대한 불신과 공포가 극에 달한 시대이다. 매카시즘(미국 극우파들이 ‘반동분자색출’)이 팽배하던 그 시대에 필립K.딕은 핵전쟁으로 마감한 2차대전의 공포와 모순을 미국 내에서 보게 되었다. 이것을 주류 문학이 아닌 SF장르라는 소설로 대체 표현하였고 그가 비판하던 것은 개인을 지배하는 전체주의 사회에 대한 우려였다. 1950년대의 시대적 상황이 계속 진행된다면 그의 소설처럼 핵전쟁 이후 더 무서운 개인의 통제로 이루어진 자본주의 사회가 성립될 것이고 그는 이 점에 대한 강박증을 그노시스적인 상징체계의 분열로 표현했다.

오우삼의 '페이첵'
오우삼의 '페이첵'
그렇기에 그는 종교적 표현들을 소설에 많이 인용하였고 그의 이런 표현은 미국의 모순을 정확히 간파한데서 온 작가적 고뇌의 산물들이다. 개인과 전체, 부와 가난, 여자 대 남성, 인간 대 기계, 존재의 근거 기억이라는 대칭적이고 포괄적인 주제로 암울한 현실의 미래적 투영은 결국 80년대 이후 미국 할리우드가 그의 작품을 영상화하고자 하는 이유가 된다.

단순히 그의 작품과 영화들이 미래 사회의 불안심리에 기인해서 상상되어진 허구가 아니라 지금의 미국의 정치적 사회적 실정을 본다면 개연성 있는 허구라는 데에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마이너리트 리포트>에서 보면 앤더튼에 대한 도나의 예언이 다른 두 예언자의 예언과 반대되는 결론을 내렸는데도 결국 도나의 예언은 무시되고 머조리티 리포트(다수의 의견)만 결론적으로 보여짐으로써 또 다른 의견 마이너리트 리포트는 무시된다. 즉, 소수가 모여 다수가 되었는데 현재의 미국은 다수에 의한 소수의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이런 선구자적 안목이 그 시대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맞아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미국 사회의 이면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렇기에 2003년 할리우드는 필립K.딕의 오래 묵은 소설을 끄집어내서 또 다시 영화화하는 것이다. 때문에 핀대가 어긋난 것이 아니라 정확한 시기에 선택된 영화적 소재가 바로 필립K.딕의 소설이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자신의 영화적 영역 안에 딕의 비판적 주제들을 변형해서 무리 없이 스필버그 표 영화를 만들었듯이 오우삼의 동양적 시선의 새로운 해석이 기대된다. 오우삼이 딕의 작품 주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만들었는지 확인하는 것도 영화적 재미를 높이는 일 중 하나 일 것이다.

딕의 소설이 요즘 들어 미국의 전체주의를 비판하던 주제를 잃고 영화화되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분명 미국사회는 딕에 대한 재조명의 본질을 알고 있을 것이다. 또한 헐리웃 주류 영화사들이 독특한 미래적 상상력으로 만들었다고 하는 일련의 SF영화(매트릭스, 트루먼쇼, X파일)들이 필립의 영향력을 벗어난 작품이라고 마냥 주장하지는 못할 것이다. 거장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들도 딕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다.(솔라리스, 스토커)

마지막으로 필립.K.딕의 소설이 이것 외에도 영화화된 것이 있는데 지면상 다 소개하지 못한 점 아쉽게 생각하며 여러분들이 직접 딕의 묵시록적 세계관을 여행해 보기를 권한다.

12 )
ldk209
블레이드 러너...   
2008-11-02 20:09
qsay11tem
작가가 위대해 보이네요   
2007-11-27 13:22
kpop20
소설과 영화...   
2007-05-18 23:15
theone777
정말 위대한 작가네요.. 필립.K.딕!!!   
2007-01-17 02:59
js7keien
정말 굉장한 우리시대 작가 중 한 명임엔 틀림없다   
2006-10-02 14:33
khjhero
페이첵 정말..좋았는데....ㅎㅎ   
2005-02-15 21:14
cat703
인간의 자유의지와 미래는 예측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영화였죠   
2005-02-14 11:13
soaring2
페이첵도 참 재밌었죠^^   
2005-02-13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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