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지 않는다는 것의 의미를 알려면, 나이를 먹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먼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늙는다는 것. 스스로의 한계를 아는 것. 혹은 서울의 25평 아파트를 소유하려면 꼬박 18년간을 저축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 이대로 계속 나이를 먹고, 지금과 별로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남루하게 죽으리라는 예감. 술을 맛있어서 마시는 게 아니라는 것과 아이를 다리 밑에서 주워온다는, 혹은 황새가 물어다준다는 얘기는 말짱 거짓말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 1천원을 주고 빌린 비디오 속 영화에 나오는 것 같은 극적인 순간들로 가득 찬 황홀한 연애를 해보는 건 우리 인생에 거의 불가능하리라는 예감.
그리고... 책임. 우편함엔 친구의 반가운 편지 대신 고지서들만 가득하고, 스스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허리가 휘도록 일해야 한다는 것. 보충수업을 땡땡이치는 것 같은 일탈은 절대로 허용되지 않으리라는 것. 그리고 물론, 산타클로스와 요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없다. 요정은 없다. 그러나 영화 <피터팬>의 두려움을 모르는 소년 피터팬이 이 말을 듣는다면 준엄한 표정으로 꾸짖었을 법하다.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어딘가에서 요정이 한 명씩 죽는 거야." 그리고 숙녀와 선머슴의 두 얼굴을 가진 소녀 웬디는 늙지 않는 세계의 비밀을 들려주는 날아다니는 소년 피터팬에게 그 순간 매혹을 느낀다.
소년 해리 포터가 자동차를 타고 호그와트로 날아가는 이 시대에 100년 전(올해는 <피터팬>이 초연 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다) 희곡 [피터팬]을 영화로 만드는 시도에서 어떤 참신함을 느끼는 것은 실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미리 짚고 넘어가야 할 일. 사실 무대용 연극은 물론(J. M 배리의 원작소설 [피터 팬]은 태생이 어린이용 희곡이다) 그간 애니메이션, TV 시리즈, 그리고 가깝게는 스필버그의 <후크>까지 몇 번이나 소환돼 옷을 갈아입었던 이 유명한 이야기는 원작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졌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겨우 올해에야 처음 완역본이 출간됐을 정도. 뿐만 아니라 무대에선 주로 성인 여성들(메리 마틴이나 베티 브론슨이 대표적이다)이 연기했고, <후크>에선 얼굴에 주름살 뚜렷한 로빈 윌리암스가 연기했던 피터팬을 정말 그 나이 또래 소년의 모습으로 구현해낸 것도 이 영화가 처음이다. P. J. 호건이 감독한 <피터팬>은 여러모로 원작에 충실해 더 흥미로운 피터팬 영화.
<뮤리엘의 웨딩>과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의 P. J. 호건이 어린이용 어드벤처 영화를 만든다는 사실은 쉽게 연결해 생각하기 힘든 구석이 있다. 그러나 여성들의 성장통에 일가견이 있음을 이미 입증한 바 있는 감독은 <피터팬>에서도 스스로의 장기와 관심사를 굳이 숨기지 않는다. 그 어느 것보다 화자인 웬디의 마음속을 충실히 담아내는 영화에는 어쩌면 그녀의 어린 왕자인 '피터팬'보다는 '웬디 달링'이라는 제목이 더 어울릴 수도 있을 것. P. J. 호건의 <피터팬>에서 요정의 금빛 가루나 네버 랜드의 신비한 정경보다 정작 웬디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건 세 남자다. 어느 날 창문으로 날아온 풀잎 옷의 소년 피터와 갑갑하고 소심한 아버지 존 달링, 그리고 갈고리 손의 해적선장 후크가 그들.
한편 감독은 "피터팬은 따분한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웬디가 만들어낸 환상일 수 있다"고 귀띔한다. 거기 더해 "후크와 존 달링은 반드시 같은 배우의 1인 2역으로 해야한다"는 건 원작자 J. M 배리가 미리 못박아둔 부분. 소녀에서 숙녀로 접어드는 나이라는 점을 증언하듯, 웬디의 피터팬에 대한 애정에는 소녀다운 낭만과 지극히 여자다운 애착이 혼합되어 있다. 그러나 웬디가 "니 진짜 감정은 뭐야?"라고 다그칠 때 피터는 주춤 물러선다. 진실한 감정을 가지게 된다는 건 결국 영원한 소년의 모습에서 벗어나 나이 먹어 간다는 말과 동의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네버 랜드 바깥 세상에서 사람-설령 악당이라 해도-을 죽이는 일이 모험의 범주에 들 수 없는 것처럼.
한편 그와 대조적으로 웬디의 성인남자에 대한 동경을 반영하는 인물은 후크선장이다. 늘 피곤한 눈매의 소심한 아버지와 똑같은 얼굴을 가진 그 남자(<해리 포터> 시리즈의 '루시어스 말포이' 제이슨 아이삭이 1인 2역을 연기한다)는 악당의 위험함과 성인다운 세련된 매너를 겸비한 인물. 사실 제레미 섬터가 천사와 악마의 두 얼굴로 쿨하고 건방지게 연기해낸 피터팬에 비해 후크의 매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편이다. 어디까지나 아동용영화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두 인물이 좀더 팽팽한 균형을 이루지 못한 것은 <피터팬>의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웬디는 세월이 가져다줄 모든 것-물론 회한까지-을 수용하고 나이 먹어 갈 권리를 되찾기 위해 일상 속으로 결국 돌아가고, 다시는 피터팬을 만나지 못한다. 이는 피터팬이 그녀를 잊었기 때문이 아니라, 웬디가 '생활'을 지켜내기 위해 피터팬의 통로인 창문을 닫았기 때문일 것이다.
소녀의 성장통과 섹시하기까지 한 성적 긴장감이 영화를 내내 휩싸고 돌긴 해도 <피터팬> 안에는 시계 소리 악어와 요정의 금빛 가루에 휩싸여 날아오르는 아이들 역시 물론 존재한다. 사탕처럼 달콤하고 휘황한 영화 속 정경은 도날드 맥알파인(<물랑루즈>)의 촬영에 힘입어 빛을 발한다. "난 믿어. 난 요정을 믿어(I do believe in fairies, I do)!"를 외쳐대는 소년소녀들의 모습에서는 "I say a little prayer"를 합창하던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의 한 장면이 떠올라 웃음이 나기도. 그러나 요정이나 고층 빌딩 크기의 거대한 악어가 환상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우리는 소년소녀시절 짜릿한 모험만큼이나 어른의 세계 역시 동경했기 때문에. 부모님의 든든한 팔에 안긴 웬디는 어쩌면 자유롭고 외로운 소년 피터팬의 환상이다. 그리고 물론 웬디는 영원히 즐거운 모험 속에서 살아갈 피터와 어른 여성인 어머니를 동시에 동경한다. 그리하여 <피터팬>을 보며 새삼 떠오르는 것. 판타지란 가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동경에 다름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