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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열두 명의 웬수들>은 말 그대로 딱 한 다스의 자식을 둔 미식축구 코치와 소설가 부부에 관한 이야기다. 당대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1950년 작의 리메이크지만 독창적인 작품으로 봐도 좋을 만큼 많은 개작이 이루어졌다.
시골 고교팀 코치였던 톰은 어느 날 모교인 시카고의 대학축구팀에 스카웃된다. 한편, 결혼과 동시에 임신, 출산, 육아로 잠시도 집을 떠나지 못했던 케이트는 자신의 가족이야기를 소설로 출간하면서 홍보여행을 제의받는다. 톰은 늘 희생만 해온 아내를 이제는 자신이 보필하겠다며 케이트를 떠나보낸다. 하지만 철딱서니 없는 12명의 자식들과 수십 명의 제자들을 동시에 건사하는 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아이들은 전학 간 학교에서 완전히 촌닭취급을 받으며 점점 삐뚤어져가고, 톰은 자식 뒤치다꺼리 하느라 팀을 소홀히 한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퇴출위기에 처한다.
정력 좋은 아버지 ‘톰’ 역엔 다정다감하지만 적잖이 치사한 구석이 있는 팔불출 꼰대 캐릭터로 할리우드 가족영화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스티브 마틴이 출연, 전에 없던 열연...이라기보다 늘 해오던 연기(좋건 나쁘건 간에)를 선보인다. 무려 17년 동안 꾸준히 출산을 했다는 경이로운 어머니 ‘케이트’ 역은 <쥬만지> <그린마일>의 보니 헌트가 맡았다.
또한, 어중간한 규모의 할리우드 영화는 엊저녁 먹다 남긴 찬밥보다 못한 취급을 받고 있는 한국 땅에서야 순식간에 비디오용 영화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자국에선 톡톡히 재미를 봤다는 <우리 방금 결혼했어요>의 숀 레비 감독과 파이퍼 페라보, 힐러리 더프, 애쉬톤 커쳐 등 청춘스타들이 크레딧을 메우고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한 가족영화로서 이만 하면 꽤나 화려한 진용.
때문인지 이 영화는 <콜드 마운틴> <페이첵> <피터팬> 등의 대작들을 압도적으로 따돌리며 박스오피스에서 맹위를 떨쳤고, ‘<반지의 제왕> 빼고는 모조리 제쳤다’라는 카피가 해외마케팅의 포인트가 되었다. 물론 여기에 미국식 슬랩스틱 코미디와 따뜻한 가족주의 정서를 기반으로 한 친근한 각본과 감독 특유의 발랄한 연출 감각이 큰 몫을 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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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매력적인 장면 장면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남기는 뒷맛은 개운치가 못하다. 일생을 자식 건사에 바친 중년 여인이 모처럼 자아 찾아 나선 걸 가족에 대한 배신으로 매도하고, 가장이 하루 몇 시간 직장 나가는 걸 두고 자녀에 대한 방임이라고 몰아세우는 열두 명의 아이들을 지켜보는 것은 관객의 입장(예컨대, 결혼제도에 반감에 품고 있는 리버럴리스트들 같은)에 따라 모골이 송연한 경험이 될 수도 있다. 급기야 일보단 가정이라며 자신들의 꿈을 모두 팽개치고 낙향하겠다는 부모의 결정에 일말의 동정심도 없이 쌍수 들고 환호하는 자식들의 모습은 ‘웬수’라는 애교스런 표현으로 어물쩍 넘어가기엔 문제가 많아 보인다.
가족공동체에 대한 지지와 애정이야 나무랄 까닭이 없다. 하지만 무한정 이기적인 자식들과 무한정 희생적인 부모상에 대한 이 영화의 편파적이고 맹목적인 묘사방식은 달갑지가 않다. 가정을 위해 사회인으로서의 욕구와 책무까지 내팽개친 톰 베이커와 케이트 베이커의 모습을 흐뭇한 시선으로 그려내는 라스트 신은 할리우드식 가족주의의 위선과 폭력성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다. 게다가 잠시도 쉬지 않고 사고를 쳐대는 열두 명의 아이들과 이 통제불능의 말썽꾼들 때문에 패닉상태에 빠진 아버지의 모습은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아무래도 이 영화의 교훈은 ‘자녀는 적당히 낳자’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