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 관점에서, 여성성이 거세된 늙은 여인은 생산성을 잃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오죽하면 ‘그의 늙음은 가히 주술적이다/ 뙤약볕의 개구리처럼 끔찍하게 마른 사지 오그라든 젖통이/ 눈꺼풀은 돌비늘, 눈알을 덮고 나무 옹이 같은 입….’ 이라고 참으로 암울하게 목욕탕의 어느 노파를 묘사했던 시도 있었을까.
56세 여자와 63세 남자가 펼치는 꽤나 유쾌한 로맨틱 코미디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을 보고, 필자는 이런 싯구를 떠오르며 왠지 모를 서글픔을 느끼고 있었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말이다. 왜냐하면 여자 주인공 ‘에리카’로 등장하는 다이앤 키튼은 주름살이 눈에 띄긴 하지만, 결코 ‘끔찍하게 마른 사지나 오그라든 젖통’의 소유자가 아니었기 때문. 미국 개봉 당시 할리우드 가십 지면을 온통 독차지했을 만큼, 빼어난 몸매를 지닌 다이앤 키튼은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아름다운 배우다.
|
하지만 영화를 보고 혹시 필자와 같이 ‘못된’ 생각을 하게 된다면, 이 영화를 통해 편견을 버려보시라. 연출을 맡은 낸시 마이어스 감독은 우리의 그런 편견들을 향해 따끔한 우회탄을 날리기 때문이다. 사랑은 몸이 아닌 정신의 끌림이 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 달콤하면서도 열정적인 사랑은 나이가 들어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 젊은 사람들에게는 단순히 흉측하게 시든 늙은 육체로 보일지라도, 우리의 노화된 육체도 부드럽게 파고드는 사랑의 유희와 짜릿한 충일감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랑스러운 몸이라는 것 등을 말이다.
물론 이 영화가 노리는 보다 중요한 급소는 ‘해리’의 캐릭터. 서른 살 이상의 여자들에게는 눈길 한번 쏟지 않던 ‘뻔뻔한’ 바람둥이 해리는 늙어서도 ‘영계’만 찾는 우리 주변의 남성들의 모습을 코믹하게 형상화한 인물이다. 그에게는 탱탱한 젊은 여성들의 몸이 욕구 해결의 도구며, 늙은 여자는 단지 여성성을 상실한 볼품없는 대상일 뿐이다. 그런 그가 에리카를 만나면서 서서히 변화한다. 왜? 에리카는 그와 ‘영혼’이 교감될 수 있는 여자기 때문이다.
남성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이런 해리의 캐릭터는 한편으론 ‘늙은 남자’가 서 있는 지점을 정확하게 꼬집기도 한다. 재력과 명성이 아니면 젊은 여자들의 환심을 살 수 없는 늙은 남자의 육체도 ‘남성성’을 상실한 초라한 몸뚱아리기는 마찬가지. 해리는 그의 재력과 명성으로 젊은 여자들의 육체를 지치지 않고 탐하면서, 소멸돼 가는 그의 남성성을 끊임없이 재확인하는 고독한 인물이다.
각본도 담당한 낸시 마이어스 감독이 ‘해리’와 ‘에리카’ 역할로 잭 니콜슨과 다이앤 키튼을 철저히 염두에 두었다고 전해질 만큼, 두 남녀 배우는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해리와 에리카에 밀착됐다. 엉덩이까지 드러내며 열연한 잭 니콜슨과 지적인 이미지의 여배우 다이앤 키튼이 과감하게 누드를 펼치며 형성하는 이 초로(初老)의 로맨스는 젊은 남녀가 펼치는 로맨스와는 또 다른 근사함을 즐겁게 뿜어낸다. 특히 이혼 후 남자와는 담을 쌓고 지내던 유명 극작가 에리카가 또 다시 찾아온 ‘사랑’이란 감정앞에 사정없이 흔들리는 모습을 연기한 다이앤 키튼은 깜찍 그 자체. 2004 골든글러브 뮤지컬 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 수상이나 오스카 여우주연상 후보 노미네이트가 충분히 수긍된다.
|
그건 여러분들이 판단하기 나름이다. ‘해리’로 말하자면 영계를 좋아하던 자신의 ‘기호’를 포기하는 것일 수도 있고, ‘에리카’나 그녀의 딸인 ‘마린’의 경우엔 사랑하다 상처받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드높은 ‘자존심’을 버리는 것일 수도 있으리라.
뭐 아무려면 어떻겠는가. 누군가 사랑하는 모습을 본다는 건 자신이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즐거운 광경이다. 하지만 이 유쾌한 풍경 속에도,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도사리고 있다. 과연 해리나 에리카가 능력있고, 멋있는 상류층 아저씨, 아줌마가 아니었어도 그들의 로맨스가 그렇게 즐거울 수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어려웠을 것 같다. 어찌됐든 이 영화는 칼날 수위는 낮고, 판타지 수위는 높은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