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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겉표지 이미지와 몇 줄의 시놉시스만 봐도 ‘뭐야, 또 나쁜 여자 vs 착한 남자의 공식으로 움직이네‘라는 투덜거림이 생기는 <위험한 유혹>. 하지만 그 뻔할 뻔자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착한 남자’로 등장하는 제시 브랫포드가 그런 역할에 썩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니 왠지 모를 궁금증이 유발되는 것이었다.
<브링 잇 온>에서 음악을 하기엔 카리스마가 다소 떨어지는 귀여운 얼굴로 기타줄을 튕겼던 제시 브랫포드. 이 영화에선 광증을 보이는 여자에게 시달림을 받는 ‘섹시한’ 수영 선수로 등장하니, 이것 또한 미스매치격의 캐릭터가 아닌가!
아무튼 이런 사소한 재미에 끌려 선택한, 존 폴슨 감독의 <위험한 유혹>은 생각보다 재밌는 구석이 엿보이는 심리 스릴러였다. 고등학생인 ‘벤(제시 브랫포드)’은 한때 지독한 문제아였으나 청순한데다 착하기까지 한 ‘에이미(셔리 애플비)’를 만나 마음을 다잡은 결과, 지금은 촉망받는 수영 선수가 되어 있다. 얼마 후면 스탠포드 대학의 스카우터들이 참관하는 수영 대회가 열릴 예정이고, 여기서 평상시 실력만 발휘한다면 입학은 따논 당상이다.
훈련도 성실히 하고, 방과 후면 엄마가 일하는 병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루하루 뿌듯한 시간을 보내던 벤. 그에게 유일한 근심거리는 스탠포드 대학에 진학하면 여자 친구 에이미와 너무 멀리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문제의 악녀(惡女) ‘매디슨(에리카 크리스텐슨)’이 등장하면서부터, 그의 일상은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한다.
첼로를 전공하는 우아한 분위기의 매디슨은 풍만한 몸매에 금발 머리를 지닌 전형적인 팜므 파탈형(극중에선 남자들이 그녀가 무척 매력적이라구 얘기하지만, 아무리 뜯어봐도 미인은 아니니, 암시를 걸을 것. ‘그녀는 예쁘다…예쁘다….’ 그래야 영화에 몰입하기기 쉬워진다!). 매디슨의 유혹에 넘어간 벤은 결국 <위험한 정사>를 방불케 하는 에로틱한 정사를 수영장에서 벌인다.
이때부터 <위험한 정사>의 ‘짝퉁’ 분위기가 노골적으로 펼쳐지기 시작한다. 에이미를 배신했다는 죄책감에 휩싸인 벤이 다음날부터 매디슨을 멀리하자, 그녀는 <위험한 정사>의 글렌 클로즈같이 돌변해 무시무시한 공포를 조장한다. 토끼탕을 끓여 온 가족을 경악케 했던 글렌 클로즈의 엽기적인 만행 등은 <위험한 유혹>에선 벤이 아르바이트하는 병원의 환자에게 독약 투여해 죽이기, 벤의 친구이자 라이벌을 야구방망이로 때려 죽이기 등으로 대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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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봐도 크게 히트할 매력은 없어 보이는데, 이 영화는 희안하게도 미국 개봉 당시 M. 나이트 샤말란의 <싸인>을 밀어내고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돌풍을 일으켰다. 제시 브랫포드도 마찬가지지만, <트래픽>에서 마이클 더글라스의 마약 중독자 딸로 열연했던 에리카 크리스텐슨도 스타급 배우가 아니었기에 더욱 놀라운 선전이었다(이 영화로 제시 브랫포드, 에리카 크리스텐슨, 셔리 애플비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고).
도대체 진부하기만 한 이런 스토리의 영화가 흥미를 준 이유는 뭘까. 곰곰 생각해 보니 그건 관객들의 심리를 리듬감있게 쥘락펼락하는 존 폴슨 감독의 연출력 때문이었다. 비극적이지만 피식 웃음이 도는 우연적인 상황 설정과 인상깊은 색감을 보여준 전작 <씨암 선셋>. 그는 <위험한 유혹>에서도 블루톤의 색감을 매력있게 응용하며, 이 <위험한 정사>의 10대 버전을 맛깔나게 구성했다.
거칠게 말하면 ‘그니까 진실한 이성 친구 놔 두고, 바람피지 말라구!’라는 지루한 교훈(?)으로 압축될 수 있는 <위험한 유혹>은 문란한 미국 10대 남녀들에게는 뜨끔하면서도 귀가 솔깃한 내용일 수도 있었으리라.
혹시, 당신 주변에 섹시하고 매력적인 그, 그녀가 자꾸만 접근하지는 않는가. 그렇담 조심하시라. 벤처럼 하루 아침에 모든 걸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