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애국가 제창’은 생략한다기에 재빨리 자리에 앉는데, 거의 자동으로 옛날에 유명했던 어떤 선언문의 서두가 떠오르는 거 있죠. 나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작심하고 계속하면 그 긴 것도 얼추 암송이 되겠더라구요. 이 땅에 태어나…ㄹ까, 말까… 그렇게 틀어버리고 말았습니다만… 집에 와서 초등학생인 첫째에게 물었더니 그 유치원이 이상한 게 아니라고… 그래서 너 그 맹세 외우냐고 했더니, 그걸 어떻게 외우냐며 웃기에 저도 안심하며 함께 웃었습니다. 속으로 이렇게 말하면서요. 얘야, 엄마 아빠는 그 맹세는 물론이고 망할놈의 그 ‘헌장’을 못 외우면 매 맞고 집에 못 가고 그러면서 컸단다.
벌써 재작년 일이 됐네요. 월드컵 기간 동안 젊은이들이 그야말로 ‘태극기 휘날리며’ 거리를 누볐죠. 머리에 어깨에 허리에… 아예 태극기로 옷을 해 입고 다니기도 했잖아요. 저는 그 세대의 꽁무니에라도 어떻게 매달려 볼까 싶어 까치발을 딛어보는 편인데, 그 대목에서만큼은 그들과 같은 세대임을 깨끗하게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신성한 국기를 보자기나 두건 다루듯 한다고 눈살을 찌푸린 어른들도 있었다지만, 저는 그런 심정은 아니었구요. 난 죽었다 깨나면 모를까 저러지 못하네… 뭐 그런 마음이었죠. 왜 못할까요?
우선 저에게 태극기는 언제나 높은 데 걸려 있어 올려다보며 경례를 붙이거나 하는 대상으로만 각인되어 있습니다.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그런 다짐을 강요당하면서 태극기를 보고 안 굳어질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에게 태극기를 지극히 경외하는 마음이 싹터서, 제가 태극기를 망토로 두르지 못하는 걸까요? 아니죠. 싫어서죠. 최소한 저는 그렇게 몸 가까이 둘 만큼 그 깃발을 좋아해본 적이 없는 겁니다. 어린 시절 받은 교육이란 그토록 무서운 거지요. 길을 가던 이 땅의 모든 국민들이 일제히 멈춰서서 휘날리던 태극기가 고이 내려올 때까지 꼼짝 말고 기다려야 했던 적이 있음을, 모르거나 기억 못하는 세대가 부러울 뿐이지요. 영화 볼 때마다 일어서서 애국가를 들어야 했던 그 고역을…
그래서 억울한 건 누구인가요. 아무 죄 없는 저 노래와 깃발. 그리고 그 불쌍한 애국가와 태극기를 자랑스러워하기는커녕 지겨워하고 멀리하게 된 저 같은 인생, 그 덜 떨어진 세대에게 자비를… 그런데 이들이 막내 동생쯤으로 속해 있을 이 땅의 기성 세대가 시방 아들딸 세대와 뒤섞여 거리로 몰려나오고 있다지요. 옛날을 회상하는 영화 한 편 보기 위해 말입니다. 그들 중에는 ‘대한 뉴스’는 왜 안 하고 지나가나 의아해할 사람도 정말 아주 없지는 않을 거예요.
저는 다행스럽게도 전쟁을 겪지 않았습니다. 그 기준으로 따지면 저는 확실히 신세대에 속합니다. 영화를 보면 그게 얼마나 다행인지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죠. 영화는 주인공 둘이 전부 군대에 가 있는 바람에 주로 전투의 참상을 보여주는 데 치중하게 되지만, 그것만으로도 저 때 태어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야 하며 가슴을 쓸어내리기에 충분합니다. 저는 이 영화에 대해 다른 얘기는 별로 할 것이 없습니다. 요즘 정신 없이 뛰어다닐 어느 국회의원은 바쁘신 와중에도 이 영화에서 친북, 좌익, 용공… 등등의 냄새가 난다고 예민한 후각을 자랑했다니, 제 버릇 개 못 주는 까닭을 알 것도 같습니다. 어떤 평론가는 이 영화가 한국 전쟁에서 이념 문제를 지우고 전쟁 일반의 비극성을 부각시켰다고 분석했는데, 그런가 아닌가를 놓고도, 그래서 좋으냐 아니냐를 놓고도, 갑론을박은 있을 수 있겠습니다. 저는 그저 이 영화가 한 20년 전쯤에 나왔다면 반응이 어땠을까 생각하다가, 그때면 5공 시절인데, 지금도 용공 소리 듣는 영화를 그 살벌한 시절에 만들 수나 있었겠나,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말았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보여주는 형제애에 감동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분들이 이상해 보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서로 다른 감정선을 갖고 있는 거겠지요. 저는 대신 잘생긴 두 주연 배우를 감상하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장동건은 확실히 달라졌네요. 눈이 뒤집혀서 희번덕이는 장면은 정말 강렬했는데… 특수효과였을까요? 인물이 변모하는 과정과, 그러면서도 일관성 있게 유지되는 본래의 성격이 좀더 섬세하고 정확하게 그려졌으면 설득력이 더했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시나리오의 문제겠지요. 원빈은 역시 마스크가 출중합니다. 그냥 잘생겼다는 의미가 아니라 왜 카메라발을 받는다는 표현 있잖아요. 그의 얼굴이 스크린을 꽉 채우면 정말 근사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열혈 팬들은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날 만하겠어요. 그런데 역시 연기력은 아직 좀… 특히 발음 연습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아요. 어려운 배역을 맡기는 했죠. 아무튼 장동건과 원빈. 한국영화의 미래를 밝게 하는 성장가도의 두 배우임에 틀림없어서 흐뭇했습니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에게, 전쟁도 모르면서 뭘 안다고 철없이 까부는 거냐, 하기보다는, 그래 너희들이 전쟁을 모르는 것이 참 다행이구나, 앞으로도 영원토록,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그럴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니, 하면서 어설픈 대답이라도 들어보려 하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것은 마치 저처럼 ‘낀’ 세대가 거리에서 태극기 휘날리며 춤추는 세대에게, 니들이 유신을 알아? 광주를 알아? 하며 괜히 심술을 부리기보다는, 그래 너희들이 우리처럼 국기에 대해 헛된 다짐이나 웅얼거리며 한창 나이를 그 웃기고도 슬픈 시절과 함께 보내지 않을 수 있게 되어 참 다행이야, 우리 그렇게 계속 역사를 새롭게 가꿔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답 안 하고 내빼더라도 계속 물으며 기다려줘야 하는 것처럼, 명백히 올바르고 아름답고 정정당당한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