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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에 의하면 사랑의 유효기한이 3년 미만이라고 답한 사람이 평생이라고 믿는 사람보다 많다고 한다. 사랑은 잠시고 정으로 산다는 어른들의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데 여기 유효기간이 단 하루뿐인 사랑이 있다. 그야말로 하루살이 사랑이라는 말이 적절할 듯. 교통사고로 인해 이전의 기억만을 안고 살아가는 여인. 그리고 하룻밤이 지나면 전날 있었던 일을 세탁한 듯 하얗게 까먹고 마는 단기기억상실증 때문에 빚어지는 해프닝과 사랑을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영화는 뭇 여성들의 증언으로부터 시작된다. 하와이 여행 중 즐긴 밀회에 관한 증언이다. 그리고 그녀들의 입에서 마지막 흘러나오는 상대의 이름은 한결같이 헨리(아담 샌들러)다. 그야말로 헨리의 바람기질이 얼마나 다분한가를 여과 없이 보여준 사례라고 할까. 헨리는 하와이에서 낮엔 수족관의 동물들을 밤엔 여자 관광객을 돌보는 수의사다. 한 여자에게 매이기 싫어 현지인 보다는 관광객들을 꼬시는 게 그의 연애관이다. 절대 현지인과 연애는 하지 않겠다던 그의 다짐이 깨진 건 예쁘고 활달한 루시(드류 배리모어)를 만나면서부터. 어렵사리 작업에 성공해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헤어지던 헨리는 다음날 첫 데이트 약속을 받아내고 룰루랄라 집으로 향한다.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던 것. 하지만 다음날 루시에게 접근하던 헨리는 치한 취급을 받고서야 식당 주인으로부터 그녀가 단기기억상실증이라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쯤되면 이 여자를 계속 만나야 할지 아니면 그만 만나야 할지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냥 하루쯤 재미있게 놀다 헤어지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바람둥이들에겐 더없이 좋은 조건일 테지만 진정으로 사랑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더없이 가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용기 있는 남자라도 프로포즈 한번 하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이던가. 어렵사리 프로포즈에 성공해 이제 좀 제대로 사랑을 해보나 싶으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상황의 반복. 매일매일 색다른 접근에 성공하는 헨리의 작업들이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한다. 그래서 두 사람은 언제나 신혼이라는 말이 실감나도록 하루하루 새로운 데이트를 즐기게 된다. 사랑은 이렇게 늘 관심을 갖고 처음 먹은 마음이 변하지 않아야 오래 지속된다는 얘기다. 서로에게 친숙하고 길들여져 잠시 긴장을 놓는 사이 사랑에 균열이 생기고 변하기 시작한다는 평범한 진리는 헨리가 선보이는 다양한 프로포즈에서 발생하는 웃음 속에 묻어있다. 때문에 만나고 오해로 인해 싸우고 헤어질 위기에 봉착했다 겨우 화해하고 행복하게 끝을 맺는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에서 약간 벗어난다. 색다르고 신선하게 다가오는 느낌이 바로 여기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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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한 사랑이야기 이며 기억에 관한, 추억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차곡차곡 쌓아 가는 사랑의 추억. 이것이 살면서 쌓인다는 정이 아닐까. 이미 [웨딩싱어]에서 호흡을 맞췄던 아담 샌들러와 드류 배리모어가 선보이는 로맨틱 코미디치고는 그다지 화려해 보이진 않지만 잔잔한 울림까지 전해주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상어에 대한 남다른 지식을 갖고 있는 헨리의 친구로 등장하는 롭 슈나이더의 천연덕스러움과 동생을 지키기 위해 몸 짱이 돼야한다는 일념에 사로잡힌 오빠 숀 어스틴의 어벙함은 폭소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두 사람이 지원하는 든든한 웃음 덕에 주인공들은 일부러 코믹한 상황으로 쫓겨다닐 필요 없이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다. 덕분에 영화는 웃고 즐기는 재미있다는 표현보다는 즐기면서도 가슴에 뭔가 느껴지는 괜찮다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