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니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아시모프 원작인 <바이센테니얼맨(The Bicentennial Man),1999>의 로봇 앤드류 마틴도 되묻는다.
‘난 뭐지?’ .
‘뭐긴 뭐야. 로봇이지.’
라고 아시모프도 프리야스 감독은 말하지 않는다.
영화 <아이,로봇>은 가까운 미래의 로봇 반란을 다룬다. 2035년도쯤 과학기술은 래닝 박사아래 인간의 딱갈이 로봇 NS-5를 대량 만든다. 로봇들 중 써니는 이름을 가진 특별한 NS-5로봇이다. 그는 SF영화 역사상 처음 보이는 최신 기술인 포토-리얼리즘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목소리는 남자지만 모습은 섹시하다. 트랜스젠더 로봇인가.
미국 로보틱스 학회 회장인 데이비드씨 말로는 영화 속의 써니는 근 미래에 가능하단다. 놀라운 세상을 산다.
NS-5종족을 만든 아이로봇의 아버지 래닝박사는 의문 속에서 죽는다. US 로보틱스 회사내 바닥에서 죽은 채 발견된다. 회사 건물은 프리츠 랭의 <메트로 폴리스> 건물같지만 영화 속 배경인 시카고의 시어스타워에 첨탑만 없앤 모양 꼴이다.
‘난 특별해. 내 이름은 써니야. 그 것이 아니라.’ 써니가 자뻑에 빠질만하지않나.
스프너형사는 현장검증 중 써니와 부닥친다. 써니는 당연이 열나게 도망친다. . 현장범이 아닌가. 그는 도망치는 써니를 살해로봇으로 단정 내린다. 써니가 자신을 만들어준 아버지 래닝박사를 죽였다면 존속 살인이다. 외려 그렇게 가면 재밌을 걸 써니는 범인이 아니다.
다시 스프너형사는 사건을 탐문 수사한다. 그는 수잔박사(브리짓 모나한)를 만나고 그녀는 로봇에다 인간심리를 넣는 일을 하는 로봇심리학자다. 별로 로봇의 심리를 잘 아는 것 같진 않다. 본인 심리도 어떤 때는 헷갈린다. 원작에는 없는 그녀다.
스프너형사는 사건을 탐문하면서 써니와 찡긋 윙크를 나누는 돈독한 사이가 된다. 인간이 기계를 믿는 놀라운 변화다. 믿다 못해 목숨도 맡길 정도이다. 써니는 그를 통해 신뢰를 표현하는 방법을 배운다. 스프너형사와 수잔박사와 함께 진짜 살인범을 찾을 때도 혁혁히 도와준다. 이렇게 세 명은 심심한 단순 추격전을 따라 후반부까지 잘 몰쳐다닌다.
의외로 원작인 아시모프 공상과학 소설들은 영화로는 안 팔린다. 오래 전부터 영화소재나 TV시리즈로는 단골이긴 했다. 직접 아시모프가 70년대 공동 각본도 써봤지만 영화화 된 건 <바이센테니얼맨 >와 <아이,로봇>정도다.
왜? 이유는 아시모프의 소설은 50년대 핵 전쟁을 겪고 본격적으로 탄생한 SF영화들과는 각도가 좀 다르다. 50년대 탄생한 SF영화 장르는 공통적으로 과학기술발전은 인류의 멸망을 가져온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50년 이전에도 프리츠 랭의 <메트로 폴리스(1926)>, 윌리암 카메론 멘지에스의 <Things to come(1936)>등도 있지만 공상과학영화라고 독립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50년대이다. 그때 사람들은 세계 제 2차 대전을 통해 과학기술의 쾌거인 핵무기가 인류를 멸망시킬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런 시대적상황을 담으니 영화 속에서 나오는 핵무기,로봇, 우주인,괴물들은 다 없애야 할 적이다. 핵무기를 다룬<When worlds collide,1951>부터 특이 냉전시대에는 언제 어떻게 당할 지 모르는 전쟁 분위기 속에서 외계인과 몬스터 SF의 단골손님이었다.
아시모프와 프리야스감독은 주류인 SF소설과 조금은 다른 입장이다. <2001:스페이스 오딧세이>의 ‘할’같은 아이로봇의 ‘비키’가 있지만 로봇은 적이 아니라 윙크를 나눌 대상으로 본다.
막판 함축적인 장면이다. ‘내가 뭐지’라고 묻던 써니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체 게바라’나 ‘모세’마냥 버려진 로봇군중 위에 우뚝 선다. 군중을 끌고 유토피아로 갈지 게릴라 전술을 할 지는 2편이 나와야 알 수있다.
영화 <바이센테니얼맨>에 앤드류도 그 자유를 위해 재산을 내어놓겠다고 하고 수명을 2백 살까지만 살아버린다. 소설은 더욱 절절하다. 자유는 곧 목숨처럼 숭고하다.
영화는 그동안 SF영화가 적으로 규정한 대상을 신뢰해야 되고 인간답게 살 자유를 줘야 한다고 한다. <아이,로봇>이 아시모프원작을 많이 따온 것은 아니지만 원작의 시각과 닮았다. 그래서 아래의 <A.I>에 <마이너리 리포트>,<블레이드 러너>,<로보캅>,<메트릭스>,<터미네이터>등과 조금 다르다.
80년대이후 S.F영화에는 비약적인 컴퓨터기술의 발전으로 컴퓨터 그래픽, 돌비스테로이드 사운드가 빛을 낸다. 지금껏 발전된 기술에다 프리야스감독만이 내는 비쥬얼적인 면은 독특하다. 그는 빛을 갖고 요리하며 눈으로 보여주는 표현주의 감독이다.
로봇이야기에 살인을 넣어 SF스릴러로 묶는 의도는 좋았다. 하지만 익숙한 전개로 긴장감은 떨어진다. 다행인건 그 자리를 감독의 시각적 재주가 메워준다.
사람들은 과거 SF영화에서 보던 외계인도 핵무기도 전쟁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너무 두렵다 못해 두려움이 없어진 세상이다. 그래서 요즘 SF영화는 스파이더맨마냥 인류의 멸망을 구해줄 평범하고 착한 영웅이 환영 받는다. 안타깝게도 인류를 구할 착한 영웅은 없다.
역사를 거슬러 백인의 딱갈이를 흑인이 흑인의 딱갈이를 멕시코인이 그리고 미래는 로봇이 할 것이다. 역사는 그렇게 딱갈이들의 땀으로 굴러간다. 미국 <아이,로봇>회사의 롬보 진공청소기대신 더 진화된 로보사피언스가 곧 등장할 꺼란다. 로봇도 노조를 꾸리게 도와줘야 된다는 감독의 생각이 흥미로왔다. 영화를 볼 줄 아는 로보사피언스들에게 <아이,로봇>을 틀어주면 매우 좋아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