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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들에 그토록 열광하면서도 그를 숭배하지 않는가?
그 감독이 알고 싶다 | 2004년 8월 30일 월요일 | 영화평론가 박소진 이메일


● 스필버그 특별전이라는 낯선 단어

스티븐 스필버그 특별전이나 회고전이라는 말은 왠지 낯설다. 어쩌면 그의 영화들에 대한 특별전은 그가 죽고 난 다음에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주 잠시. 그렇다면 그의 영화세계에는 특별하게 다루어져야 할 세계관이나 영화에 관한 대가다운 면모가 전혀 없는 것일까? 스필버그에 대해 우리가 더 이상 궁금해 하지 않는 것은 아마도 이미 그에 관해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에 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 것일까? 유대인이며 어릴 적부터 단편 영화들을 만들었으며 요절한 한국의 영화감독 하길종과 동문수학하던 영화학교 학생이었다는 것 정도와 그 이후에는 주로 그의 화려한 필모그래피와 엄청난 흥행성적으로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IMDB라는 영화전문 데이터베이스에서 스티븐 스필버그의 필모그래피를 뽑아보면 아마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제작한 영화와 TV 시리즈 90편과 지금 제작 중인 영화 1편 그리고 TV 시리즈 1편이 뜨고 2006년까지 제작예정인 영화 7편과 TV 시리즈 1편 등 모두 합쳐 제작했거나 제작할 영화만 정확히 100편이 뜬다. 그 중에서 <구니스>(1985)같이 거의 스필버그가 감독한 영화로 잘못(?) 알려져 있는 영화들까지 합치면 80년대 이후 90년대까지 기억 속에 남아있는 헐리우드 대작은 거의 대부분 스필버그의 손을 거쳤다고 생각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연출이 아닌 제작만 담당한 영화 중에서 굵직굵직한 영화만 꼽아 봐도 <맨 인 블랙 2>, <밴드 오브 브라더스>, <슈렉>, <딥 임팩트>, <구니스>, <백 투 더 퓨처>시리즈, <그렘린> 등 들으면 영화가 대충 무슨 내용인지는 다 알만한 영화들인 것이다. 더군다나 그가 감독한 영화도 48편에 달하며 대부분 자신이 제작도 겸한 영화들이다. 그 중에서 최신작부터 꼽아보면 <터미널>(2004), <캣치 미 이프 유 캔>(2002),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 <A.I.>(2001),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 <쥬라기 공원>(1993), <쉰들러 리스트>(1993), <태양의 제국>(1987), <E.T.>(1982), <인디아나 존스>(1981)시리즈, <죠스>(1975) 등 스필버그는 엄청난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였던 헐리우드의 진정한 수퍼스타이다.

요즘에는 <매트릭스>시리즈를 만든 워너 브라더스의 조엘 실버나 <매드맥스>, <다이하드>, <더 록>, <블랙호크다운>의 제리 브룩하이머도 명함을 좀 내미는 모양이지만 ‘드림웍스’를 이끌고 친구 조지 루카스의 'ILM'이라는 특수효과 전문 제작사로부터의 든든한 도움을 바탕으로 자신들만의 세계를 창조해가는 스필버그의 명성과 비교하자면 아직 그 깊이가 얕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스필버그는 제작자이자 감독이다. 영화를 기획하는 것과 그것을 실재의 구현물로 만들어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2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헐리우드’에서 저평가되었던 이들은 대부분 당시에는 지나친 혹평에 시달린 경우가 많았다. 스탠리 큐브릭의 기념비적인 대작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경우 폴린 카엘이라는 전설적인 비평가들을 비롯한 저명한 평론가들이 혹평하였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러한 판단이 대체적으로 지나친 것이었다는 것 그리고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것이 지적되곤 한다.
이와 관련해 상기해 볼 수 있는 측면들은 지나간 영화사에서 저평가되었던 이들이 작가의 만신전에 오른 이들의 대표적인 인물들이 바로 히치콕과 존 포드라는 점이다.

이제 이렇게 물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스필버그와 단도직입적으로 비교하긴 힘들지만 알프레드 히치콕과 존 포드가 프랑스에서 재발견되기 전까지 미국인들은 히치콕과 포드의 영화세계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었을까? 미국에서 히치콕은 단순한 대중적 감각을 가진 흥행감독 정도로, 존 포드 역시 서부극이라는 대단히 미국적인 장르를 개척한 사람으로 평가되었지만 그들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와 작가의 만신전에 올라서게 한 것은 60년대 말 프랑스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의 필진들에 의해서였다. 우리에게 지금은 익숙한 이름들이겠지만 당시만 해도 야심만만한 젊은 평론가들에 불과했던 장 뤽 고다르, 프랑수와 트뤼포, 에릭 로메르, 자크 리베트 말이다.

물론 스필버그는 히치콕도 존 포드도 아니지만 히치콕에 대해 알고 싶었던 것들이 최근에 들어서서 라캉의 정신분석을 경유해서 재평가되고 있는 것을 보면 스필버그 또한 재발견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그러한 기미는 주로 이전의 작가중심의 영화사에서 탈피한 대중문화 연구의 차원에서 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아마 스필버그가 새롭게 재평가되기 위해서 필요한 부분은 그의 영화세계에 대한 재조명이 아니라 블록버스터와 전 지구적 수준의 영화적 파급의 영향력 그리고 그에 따른 영화산업의 재편과 맞물린 영화를 둘러싼 문화적 환경에 대한 폭넓은 연구가 필요한 형편이다.


● 그는 왜 작가가 아닌가!

‘86년에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98년에 구로사와 아키라, 스탠리 큐브릭 등이 차례로 사망해간 후 영화세계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나간 작가들의 기근현상이 빚어졌다. 호랑이 없는 골짜기에 토끼가 왕이라고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타이타닉>으로 아카데미 감독상과 작품상을 거머쥐고는 ‘자신이 세계의 왕’이라고 떠들기도 했다. 물론 그것이 은유적인 표현에서 기분이 매우 좋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기꺼이 그의 기분에 맞춰줄 만한 시상식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기억된다. 그런 점에 비춰볼 때 스필버그 역시 시네아스트라고 불리기에는 아직 그의 대가를 향한 욕망과 콤플렉스를 벗어던지기엔 어딘가 부족한 듯 보인다. 그것은 어쩌면 작가중심의 비평을 주로 했던 기존의 영화사가들이 가지는 태생적 한계일 수도 있다.

이것은 어쩌면 매우 첨예하지만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영화적 담론에 있어서의 중요한 분기점일 것이다. 작가중심의 영화담론이 퇴조를 거듭하고 있음에도 그다지 새로운 영역들에 대한 연구성과를 기반으로 하는 비평이 형성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경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스필버그의 영화가 헐리우드라는 거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휴머니즘을 바탕에 깔고 영화내적인 스토리구조를 탄탄하게 하면서 비판적인 자기성찰성을 전혀 갖추지 못하거나 그런 비평의 지점들을 염두에 두더라도 결국 헐리우드 영화의 미국중심의 백인우월주의적 정서에 근본적으로는 반하지 않는 형태들로 변화해 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모든 근본주의적 담론은 아무런 대안을 내놓지 못한다. 헐리우드의 친자본주의적이며 서구중심주의적 휴머니즘에 대한 비판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안티테제라고 할지라도 그것들이 가진 속성의 파급현상과 국지적인 양상들에까지 무관심해서는 안될 것이기 때문이다. 스필버그를 이런 논쟁의 선상에서 보았을 때, 비교적 최근에 논쟁의 중심에 섰을 때는 스탠리 큐브릭의 기획을 영화화한 <A.I.>를 촬영했을 때였다. 큐브릭의 음울한 묵시록적 미래세계를 피터팬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스필버그가 망쳐버렸다는 것이 일단의 평가였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A.I.>에 대한 평가가 큐브릭이라는 작가의 영화세계를 단지 스필버그의 손을 빌어 완성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장담컨대 아무도 스필버그를 대가master로 대접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왜 모두들 스필버그의 영화들에 열광하면서도 숭배하기를 꺼리는가? 그에 관한 대답에 빔 벤더스의 영화 <시간의 흐름 속으로>에서 자조 섞인 한 때의 탄식이 도움이 될 법하다. 이야기는 반세기 전 대륙을 오가는 전쟁터의 이데올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양키는 우리의 무의식조차 식민화시켜버렸어.’ 그렇다. 한 때 유럽이 온통 전쟁터가 되었을 때 병사들과 시민들의 유일한 즐거움은 헐리우드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유럽 대륙의 포화와 총성을 멎게 하는 유일한 공간은 오직 극장 안의 휘황찬란한 미제 스크린이었으며 그 속에서 그들은 잠시나마 전쟁의 공포를 잊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환상이라고 여겼던 것들을 미국에서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한 환상은 헐리우드의 대자본이 자유로이 그들의 영화를 전세계에 배급할 수 있도록 강제할 수 있는 구조를 구축하는 데 바쳐졌다. 스필버그는 그러한 헐리우드 영화세계라는 환상을 구축하는데 기여한 일등 공신일 것이다. 환상이라는 하나의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것은 튼튼한 현실적 기반이 구축된 다음에야 가능한 것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데올로기와 환상은 서로를 떠받치는 튼튼한 버팀목이 되어 헐리우드를 지탱하였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앞서 말한 ‘식민화된 무의식’의 환상적 세계는 스필버그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었는지를 이제 살펴보도록 하자.


● 스필버그의 판타지화된 시공간

스필버그의 주된 무기는 SF적 상상력에 기반한 휴머니즘적 터치와 치밀한 이야기 구조에 있다.

로빈 우드가 70-80년대 미국의 공포영화를 분석하면서 공포의 대상이 가지는 계급적 성격과 정치적 함의를 분석하면서 미국의 월남전에 대한 콤플렉스와 백인들의 무의식적 쾌락에 봉사하는 공포영화의 장르적 구조를 분석한 것처럼 스필버그의 영화에도 그러한 분석의 칼날을 들이댈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야기를 중시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공간에 대한 감각이 하나의 영화적 캐릭터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기도 하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E.T.>를 필두로 <백투더 퓨처>, <미지와의 조우>, <이너스페이스>, <쥬라기 공원>처럼 그는 미국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대자본이 투여된 영화를 전매특허로 한다. 그것은 미지의 상상력이 미치는 아직 확실하지 않은 상상력의 공간을 실체화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것이 아무리 상상력에 기반한 미래사회에 대한 묵시적 경고를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미래사회의 담론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이미 현재에 들어와 있는 미래사회를 살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 예언한 우주여행이 아직 현실화되고 있지는 않지만 미래사회에 대한 상상은 헐리우드 SF영화라는 견고한 함수관계에 의해 산출되고 그것을 기반으로 세계는 아직 오지 않는 미래에 대한 상상력에 의해 역으로 현실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스필버그는 그런 점에서 대단한 미래학의 연구대상일 것이다.

<쥬라기 공원>의 유전자 공학이 비록 현재에는 허황한 상상력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생명공학의 담론을 대중화시키는 데 기여하였으며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보여준 미래사회는 <백 투 더 퓨처>의 뫼비우스 띠 같은 시간 고리의 연쇄와 <쥬라기 공원>에서 보여준 가상의 공간에서 일어날 수도 있을 법한 운명의 거센 힘과 인간 이성이 저항하는 과학기술 시스템 간의 대결을 보여주고 있다. 스필버그가 제시하는 시공간은 결코 지금 ‘여기’의 현실이 아니라고 각종 특수효과로 미장센을 미래화하고 있지만 그것은 결국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기반으로 해서 벌이는 하나의 상상적 유희일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대중적 취향에 지독하게 편승한 것인데 크게 보아 SF적 상상력이 미국민의 이데올로기적 상황에 부합한 결과물인 것이다.

초기의 메가히트작인 <죠스>의 경우 풍요롭다 못해 낭만적 권태에 빠진 미국사회를 위협하는 단 하나의 공포는 결코 보이지 않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였으며 죠스는 그러한 공포를 현현하는 초월적 대상물이었다. 죠스가 성적 방종에 빠진 하이틴에 대한 경고이자 허구적 낭만의 결에 스민 공포로서 읽혀졌고 그러한 대상은 2년 후 <미지와의 조우>에서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외계인과의 조우로서 드러난다.

<미지와의 조우>는 요즘의 그가 만든 영화와는 상당히 차별화된 리얼리즘적 요소를 드러낸다. 과학적으로 원인을 밝혀낼 수 없는 흔적들이 나타나고 이를 감추려는 군 당국 그리고 이를 파헤치려는 로이와 질리안이 맞닥뜨리게 되는 것은 저멀리 어슴푸레하게 나타나는 평화로웠으면 하는 외계생명체라는 자신들의 욕망과의 대면이었으며 그것은 과학적 사고에 기반한 미국사회가 맞닥뜨린 알 수 없는 미래와의 조우이기도 했다.

초기의 이런 SF적 상상력의 구현은 결국 <E.T.>로 귀결되는데 캐릭터 ET는 그러한 상상력과 공포가 아이들 버전으로서 구현된 것일 것이다. 스필버그는 여기서 다시 과거로의 탐험에 나서며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 착수하는데 이것은 SF적 상상력의 과거로의 투사에 다름 아니다. <인디아나 존스>의 고고학적 세계의 환상적 미래는 다분히 인류의 전 과거에 대한 문화유산을 전유하려는 시도로서 기억된다.

성배, 세 개의 돌 등 그들이 찾아내려 애쓰는 것들은 중동, 만주, 유럽을 망라한 세계문화유산들이었으며 영화의 공간은 실제로 먼지 풀풀 날리는 황무지일 뿐이지만 신비한 마력을 담고 있는 공간들로 변모해나갔다. <쥬라기 공원>의 놀이공원 역시 대단히 미국적인 사고방식에서 볼 때 하나의 디즈니랜드 혹은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 휴머니즘과 테크놀로지라는 기계장치

이처럼 스필버그는 기독교적 믿음과 외부세계의 위협에 맞서 새로운 신천지를 찾아내고 거기에서 안식을 얻는 판타지 월드의 성주이다. 그가 가끔 피터팬 콤플렉스로 설명될 수 있는 영화세계의 심리적 기제들은 바로 모든 공간과 시간을 판타지화 하면서 어린 아이의 수준으로 이해하기 쉽게 만들면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그 미로에 가두어버린다는 점에 대한 비판이다. 그리고 이후에 <쉰들러 리스트>나 <라이언 일병구하기> 같은 영화들은 이런 동심어린 판타지의 세계에 ‘휴머니즘’을 결부시키는 단계로 나아간다.

역사와 미래를 판타지화한 공간적 배경에 휴머니즘이라는 가장 흥행성 있는 보편성을 가미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인해 가장 덕을 본 이는 조지 루카스와 제임스 카메론 그리고 스티븐 스필버그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다방면에서 이런 영화기술적 발전 정확히 말하자면 특수효과 기술의 발전은 그의 영화를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버팀목이자 그 자신이 그런 테크놀로지의 발전을 이끈 장본인이기도 하다.

휴머니즘과 테크놀로지의 결합은 매우 큰 시너지 효과를 낳았다. 그것은 바로 스펙터클이었다. 스펙터클은 휴머니즘이라는 이데올로기적 메카니즘과 물질적인 테크놀로지의 결합에 의해 발생한 하나의 영화사적 현상이다. 과거의 국면들 예를 들어 <아라비아의 로렌스>같은 영화들에서 보여준 스펙터클이 실제의 풍광들에 기초하였다면 스필버그의 스펙터클은 전혀 실제적일 필요도 오히려 실제적이지 않기 때문에 더욱더 위력적인 상상력의 공간들이었다

이제 그의 최신작 <터미널>에 대해 언급할 때가 온 것 같다. 국제공항의 터미널에 도착한 나보스키의 작은 무용담 역시 휴머니즘과 아메리칸 판타지가 펼치는 ‘환상의 미장센’이다. 국제공항에 9개월이나 체류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은 이것이 실제 이야기에 기초한 것이라는 점에서 여지없이 깨어져나가며 현실감을 얻는다. 그리고 국제공항이 곧 미국사회의 축소판이며 매우 기능적으로 펼쳐져 있는 실제 삶과는 동떨어져 있지만 그것이 곧 삶의 공간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터미널>의 공간 역시 스필버그에게는 중요한 하나의 캐릭터가 되는 동시에 담론의 공간인 것이다.

여기서 단 하나 기분 나쁜 점이 있다면

그의 휴머니즘이 하나의 이데올로기적 메카니즘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유려하게 훑어내리는 카메라 워킹이 빚어내는 풍광도 아니라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서도 결코 우리는 뉴욕의 JFK 공항의 출입국 심사대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는 이방인이라는 사실이다. 그 판타지의 세계에서 우리는 언제나 국외자이자 불청객일 것이다. 비록 나보스키가 공항에서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스필버그의 휴머니즘의 한계는 곧 그가 가진 장점이기도 하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그의 SF나 액션물 그리고 심지어는 <쉰들러 리스트>나 <아미스타드> 같은 리얼리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스필버그의 휴머니즘이 광대한 영향력을 미칠 수 없는 좀 더 실제적인 판타지의 즐거움을 기다리며 그의 숭배하는 회고전이 어딘가에서 열릴 수 있기를 바란다.

16 )
sweetybug
개인적으로 SF는 별로라.. 다른 영화는 좋습니다^^   
2005-02-11 13:28
moomsh
오랫만에 이티를 다시 보고싶네요..   
2005-02-08 19:34
moomsh
한국의 스필버그=강제규감독님..ㅋ   
2005-02-08 19:34
moomsh
스필버그의 도전정신 정말 배워야죠..ㅋㅋ   
2005-02-08 19:34
cko27
그에게도 역경과 고난의 시절이 있었죠. 간혹 실패작들도 내놓고. 하지만 뛰어낸 천재성은 누가 뭐랄것도 없다.ㅜㅜ대단   
2005-02-06 18:24
ann33
작품성과 오락성을 모두 갖춘 감독.   
2005-02-03 14:03
logic22
리들리스콧, 스필버그, 제임스카메론등 대중과 평론을 두가지 다 잡는 감독들은 한쪽만 휘어잡는 데이빗 린치나 제리부륵하이머 같은 사람들보다 훨씬 더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생각.   
2004-09-06 20:07
logic22
우리나라 영화평론가들에게는 너무나 저평가 되고 있는 감독. 솔직하게 말해서 '영화'를 가장 '영화' 답게 만드는 사람. 숭배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입니다.   
2004-09-06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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