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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봄이 오면
세상 지독히 힘겹지? 하지만 우린 꿈을 꾸고 또 살아가 | 2004년 9월 23일 목요일 | 심수진 기자 이메일

누구나는 아니겠지만, 우리들에겐 손대는 일마다 실패하는 참담한 시기가 있다. 특히 돈 문제에 짓눌려 허덕이는데, 폴 오스터의 말대로 ‘이따금 돈이 떨어지거나 어쩌다 한번 허리띠를 졸라맨 정도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노상 쩔쩔 매고, 거의 숨막힐 지경’이 되기도 한다. 급기야 ‘영혼까지 더럽히는 이 궁핍 때문에 끝없는 공황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돈’과 삐걱거리는 우리는 모두 비슷한 처지며, 나이가 들수록 삶이 주는 짙은 ‘배신감’에 몸서리를 친다. 내가 꿈꾸고 원했던 것들은 자꾸 나를 비켜가고, 나는 끊임없는 기갈을 느끼며 삶을 헤쳐간다. 숨가쁘게 달려온 듯도 싶지만, 지금 살고 있는 삶은 진정 내가 꿈꾸어 왔던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꽃피는 봄이 오면>의 주인공 ‘현우(최민식)’는 그런 우리들의 쓸쓸한 초상이다. 교향악단 연주자를 꿈꾸었던, 아니 여전히 그 꿈을 품고 있는 현우. 하지만 지금 그는 아줌마들을 상대로 트럼펫을 가르치는 강사일 뿐이다. 악보를 단순히 따라가기 보다 풍부한 감정을 실어 연주하라고 조언해 보지만, 그의 목소리는 활기없는 공기 속을 떠다니다 급기야 견딜 수 없는 자괴감으로 변형돼 가슴을 후벼판다.

따지고 보면 대단한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지만, 현우에게는 수업 중 울리는 핸드폰도 아랑곳하지 않고 받는 아줌마들이 자신이 놓인 보잘 것 없는 위치를 일깨워주기에 견딜 수 없다. 그의 내면 속 상처는 ‘몇 푼의 돈을 받기 위해 내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라는 생각과 잇닿는 순간, 겉잡을 수 없이 부풀어지고 그에게 세상은 모든 게 더럽고, 아니꼬와 한 대 세게 후려치고 싶은 지독히 슬픈 풍경이다.

갈수록 ‘꿈’과 ‘현실’이 접점을 찾을 수 없이 벌어지는 상황. 결국 현우는 혼란스럽고 힘든 ‘이곳’을 떠나 ‘저곳’으로 향한다. 멀리 강원도에 있는 한 중학교의 관악부 임시 교사로 부임하는 것. 탄광업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들이 모여있지만, 그곳 역시 그의 황폐한 내면처럼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는 곳이다. 여기저기 폐광된 상황에서, 그나마 몇 군데 남아있는 탄광에 적잖은 사람들이 그들의 삶을 부여잡고 있다.

‘꽃피는 봄이 오면’이란 제목처럼, 이 영화는 현우가 그곳에서 뭔가 바뀌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하게 한다. 하지만 그 템포는 작위적이지 않게, 느릿느릿 화면에 배어든다. 그는 여전히 커다랗게 입벌리고 있는 자신의 상처와 대면한 채, 고독한 일상을 보낸다. 자그만 단칸방에서 훌훌 라면 한 젓가락을 뜨다 TV에서 비추는 노숙자의 모습을 보고, 순간 미칠 듯 실소하게 되는 장면은 그중 압권.

길거리에 주저앉아 라면을 먹고 있는 노숙자의 모습과 자신을 오버랩시키며 현우가 소리없는 웃음을 짓다 나중엔 눈물이 글썽 맺히는 모습은 자기 연민과 알 수 없는 모멸감이 뒤범벅된 그의 심리를 눈물나는 유머로 드러낸다.

그러던 현우의 시야에 천천히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온다. 당장 돈이 없어도 떡을 쥐어줄 수 있는 인정어린 노파, 이중 삼중의 자존심으로 꽝꽝 장벽을 친 그를 은근하게 열게 만드는 약국 아가씨, 그리고 그가 가르치는 사랑스런 아이들. 갑자기 미칠듯이 음악에 열정이 생겨난다거나 메마르고 건조한 일상이 일시에 화사한 유채색을 띄는 등의 설정이 아닌, 현우가 온통 자신의 상처에게만 향한 시선을 다른 사람의 상처에도 눈돌리게 되는 과정이 ‘전국 관악 경연대회’와 함께 자연스레 펼쳐지는 것.

‘트럼펫 연주자’라는 주인공의 직업이 얼핏 현실과 조화하기 어려운, 예술가 지망생의 모습을 협소하게 비출듯 여겨질 수 있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 ‘현우’는 우리 누구나 자신의 모습을 겹칠 수 있는 보통의 인물이다. 때로 세상에 버림받은 듯, 그 절망에 눌려져 배배 꼬였다가도 어느 순간 낯선 곳, 낯선 사람들에게서 삶의 온기를 부여받고 다시금 살아보자는 희망이 번져나오는 우리들처럼 말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의 조감독 등을 거친 류장하 감독은 TV에서 방영됐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그것과는 또다른 잔잔한 인생 이야기를 엮어냈다. 감정이 봇물 터지듯 강렬하게 분출하는 클라이막스나 선명한 결말을 펼치지 않으면서도, 가슴을 뭉클하게 잡아채는 여운이 남겨지는 건, 이 영화의 젠체하지 않는 수수한 몸짓 때문이다.

군데군데 허진호 스타일의 화면 구도와 이미지들이 엿보이고, 신파적인 상황들이 개입하지만, 멋부리지 않으면서도 멋이 나는 묘한 분위기를 획득하고 있는 <꽃피는 봄이 오면>. 물론 여기엔 ‘현우’역의 최민식이 이끌어내는 힘이 작지 않다. 퉁퉁해진 외양 속에 편안한 마음가짐이 느껴지는 그의 연기는 힘주지 않으면서도, 삶의 페이소스와 더불어 그 희망의 내음까지 눈물나게 전달한다.

어디로 달려온 것인지 그 길의 원형조차 보이지 않아 자꾸만 습관적으로 뒤를 돌아보게 되는지? 하지만 시간은 거스를 수도, 붙잡을 수도, 피할 수도 없다. 그래도 또 살아가게 되는 건 내 곁의 소중한 사람, 혹은 낯선 누군가에게 받는 그 빌어먹을 희망 때문이다. 오뚜기처럼 살아나는 몹쓸 꿈 때문이다...

6 )
ejin4rang
소재진짜 좋다   
2008-10-15 14:43
callyoungsin
너무 잔잔하여 흥미를 유도하지 못한다   
2008-05-16 14:05
qsay11tem
소재는 좋았는데..   
2007-11-23 13:56
ldk209
너무 잔잔하다.....   
2007-01-15 00:25
soaring2
최민식씨의 연기가 참 편안하고 좋았답니다   
2005-02-14 02:03
jju123
역시 연기파 배우 최민식~ 그이름하나만으로 이영화가 줄수잇는느낌과 감동은 끝이 업다~   
2005-02-07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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