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CG에 있어서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픽사에게 이번 <인크레더블>은 남다른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우선 픽사 스튜디오가 생긴 이래, 최초로 거의 모든 캐릭터가 ‘사람’이라는 점은 뭣보다 놓치지 말아야 할 변화. 여기에 작품에 등장하는 세트가 100개가 넘는다는 정보처럼 다채로운 상황 전개, 만지면 살들이 통통거릴듯한 운동역학의 피부와 머리카락 등 그 섬세한 기술력은 <인크레더블>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요소들이다.
스토리는 대략 이러하다. 그 옛날(?) 실사 영화의 ‘슈퍼맨’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악의 무리를 일망타진하는 자칭/타칭 세계 최강 슈퍼 히어로 ‘미스터 인크레더블’. ‘정의’를 위해 땀 송송, 근육 불뚝불뚝 세우고 다니며 대중들로부터 존경과 인기를 한몸에 받던 그였지만, 어느날 찾아온 세상의 ‘냉대’에 딴 신분으로 살아가야 할 팔자가 된다.
비단 ‘미스터 인크레더블’뿐 아니라 그의 아내가 되는 ‘엘라스티걸’, 동료 ‘프리즌’ 등 슈퍼 히어로/히로인 모두 평범한 사람인척 능력을 숨기고, 조용히 지내야 했던 것. 세월이 흘러 보험회사 샐러리맨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미스터 인크레더블’. 그는 아무런 보람도 느낄 수 없는 무미건조한 일상에 압사당하기 직전이요, 의지와는 상관없이 슈퍼 파워를 지니고 태어난 자식들을 키우느라 왕년의 ‘엘라스티걸’ 역시 진땀 꽤나 빼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던 어느날, ‘미스터 인크레더블’은 의문의 지령을 받고 다시 슈퍼 히어로 활동을 시작한다. 방치했던 징글 뱃살도 빼고, 몸짱이 되니 ‘엘라스티걸’의 사랑(!)도 받고, 사는 게 신났지만, 알고보니 엄청난 모략에 빠졌던 것. 이에 사랑하는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 온 가족이 얼떨결에 똘똘 뭉치게 된다.
장황하게 읊어댄 줄거리를 보면 알겠지만, 그 캐릭터들의 특징이 얼핏 실사 영화 <X맨> 시리즈도 떠오르는 <인크레더블>은 고개숙인 중년의 아버지들에게 일종의 파이팅을 보내는 애니임과 동시, 할리우드 단골 메시지인 화목한 가족애를 지향하는 몸짓도 보이는 작품이다.
특히 픽사의 전작 <몬스터 주식회사>에서 그 앙증맞음에 전율마저 부르르 돋게 했던 ‘부’를 잊지못하는 관객이라면, 이번 <인크레더블>에서 젖먹이 ‘잭잭’이 선사하는 귀여움에 단번에 쓰러져버린다. 목소리 연기자의 기가 막힌 ‘옹알거림’에 깜찍한 표정들이 어우러져 어떤 캐릭터들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잭잭’은 아마도 어른 관객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될 ‘히트’ 요소인 것.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적재적소에 등장,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며 관객들의 웃음을 유발하는 능수능란한 캐릭터 구축은 픽사의 장기. 그러한 픽사의 감칠맛 나는 캐릭터 묘사가 속도감있는 액션 활극과 맞물리니, <인크레더블>은 말로는 쉽게 형용할 수 없는 시원하고, 귀여운 재미를 뿜어낸다.
굳이 심각하게 바라볼 필요는 없겠지만, 곱씹을 만한 이런저런 단상 거리들이 묻어있는 것도 이 애니메이션의 매력. (삐딱하게 보면, 한줌의 잘난 영웅심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없이 혼자서 어떤 일을 해치우려는 ‘미스터 인크레더블’은 결국 온 가족이 대동하지 않으면 안 돼는 근본적인 ‘위기’를 생성하는 점에서, 은근한 정치 풍자로 읽힐 수도. 또, 말(言)의 간사한 포장으로 똑같은 인물이 영웅이 될 수도, 악당이 될 수도 있는 장면 묘사는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인 언론의 속성을 건드리는 점에서 살짝 흥미롭다.
<아이언 자이언트>로 국내 애니팬들에게도 환호를 받은 바 있는 브래드 버드 감독의 <인크레더블>은 미국에서 개봉되자마자 흥행 수입 1위를 차지하며, 여러 가지 기록들을 남긴 픽사의 성공적인 신작이다. 심오한 철학적 메시지나 아주 경탄할 만한 기술 등이 눈에 띄진 않는다 해도, 때로 너무 크게 웃음이 튀어 나와 주위의 눈총을 살 수도 있는 <인크레더블>은 올 겨울, 정말로 사심없이 강추하고픈 애니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