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나의 단어만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드는 게 바로 ‘엄마’다. 그만큼 ‘엄마’에 대한 이미지는 비슷비슷하다는 얘기다.
늘 시린 곳을 가려주고 자식을 위해 진자리도 마다하지 않는 그 이름. 그래서 ‘엄마’란 제목은 참 뻔하고 상상을 제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영화 엄마(감독 : 구성주 제작 : 필름뱅크, 청어람)는 바로 그런 장점과 단점을 고스란히 포함하고 있는 영화다.
애지중지 키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딸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엄마는 어지럼증 때문에 아무것도 탈 수 없어 해남에서 목포까지 걸어가야 한다. 자식이 웬수지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자식 일에 발 벗고 나서는 게 바로 엄마 아니던가. 결국 엄마는 운동화 끈을 질끈 동여매고 3일간의 강행군에 나선다. 결혼식이 장례식이 될 수 있다고 염려하는 자식들의 부축을 받으면서 말이다. 엄마의 전말은 이것이 전부다.
전말이 이렇다보니 엄마는 전원일기 류의 시골 드라마가 되느냐 영화가 되느냐의 기로에 선다. 때문에 빈번히 상상과 판타지를 등장시켜 전원일기의 탈피를 시도한다. 죽었던 남편이 보이기도 하고 ‘업고가자’는 큰 사위와 ‘열기구 타고가자’는 큰 아들의 의견 그리고 엄마를 응원하는 연주자들을 장난스러운 판타지로 처리해 드라마의 자연스러움을 깨뜨린다. 때문에 다소 생뚱맞고 어색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드라마 보다 축제 같은 느낌을 전달하려 했던 거 같다. 다소 엉성하지만 에밀 쿠스트리차의 영화 문법까지 풍긴다.
사람들이 떠나 허수아비로 외로움을 달랜다는 말이나, 길가에 세워둔 푯말들을 통해 요즘 농촌의 현실을 은근히 내비치기도 한다. 험난한 산에 오르니 구름다리가 있고 겨우 내려서니 강을 지나야 하는 등 엄마가 내 딛는 걸음이 그동안 살아온 인생의 또 다른 모습으로 펼쳐진다. 길은 곧 엄마가 자식을 키운 역사이기도 하다. “여기 말고 다른 길 없냐”고 울부짖으면서도 한발 한발 내 딛는다. 아무리 엄마라도 피해가고 싶은 길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식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피하지 못하고 맞서는 게 바로 엄마다. 영화는 험난한 여정을 통해 엄마이기 때문에 감내해야 하는 숙명을 보여준다.
엄마의 마음 그리고 이제 부모가 된 자식의 마음이 혼합되어 여행은 이어진다. 슬프고 진지한 드라마로 빠져들려는 순간 가벼운 농담으로 분위기를 전환하기에 진부함의 함정을 살짝 빗겨간다. 자식이기에 느껴야 하는 마음의 속죄를 강요하지 않는 장치로 코미디가 적절히 사용됐다. 때문에 엄마를 연기한 고두심의 연기는 말 할 것도 없고 분위기 메이커인 둘째(김유석) 캐릭터는 이 영화의 또 다른 보석이다. 중간 중간 호탕한 웃음과 낄낄거리는 유머가 대부분 그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손병호, 김예령, 박원상, 이혜은, 반민정 등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연기로 엄마와 둘째를 뒷받침 한다.
엄마의 지나치게 긴 독백과 나레이션 등 이미지보다 이야기로 규정지으려 하면서 뒤로 갈수록 영화는 힘을 잃는다. 또한 엄마라는 제목이 갖는 애절함과 뻔한 갈등 없이 마무리되는 결말은 여태 끌어온 재미를 반감시킨다. 관객들의 예상을 벗어나는 건 좋지만 기대마저 저버리지 안았다면 어땠을까?
다소 뻔한 감정의 줄다리기로 한바탕 눈물을 쏟게 만들었다면 그동안 불효한 마음이나마 조금 씻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 영화는 딱 이 만큼의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