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한 영화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밝히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영화는 이야기에 대한 정보 없이 직접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특히 <거북이도 난다>는 그렇게 해야만 제대로 감상 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필자 주)
어린아이에게는 힘이 없다. 그래서 자신의 기반을 부모에게 두고, 일단 거기에 모든 것을 의존한다. 그 기반에 서서 어느 기간 동안 무럭무럭 자라 하나의 독립체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어린아이에게는 가능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미완의 존재. 성인이 되어 사회의 풍파를 경험하기 전 그들에게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그래서 보통의 영화들은 어떤 시련이 다가와도 아이들만은 죽음으로 몰아가지 않는다. 희망을 짓밟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희망이다. 어른들의 이기심이 만들어 낸 고정관념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 희망마저 없다면, 그것은 세상의 끝이다. 상상하고 싶지도 않을 정도의 끔찍함. 완벽한 비극이자, 그 곳은 더 이상 사람이 살아 갈 수 없는 죽음의 공간이다.
<거북이도 난다>는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으로 칸느 영화제 황금 카메라상(신인 감독들에게 주는 최고의 상)을 수상한바 있는 바흐만 고바디 감독의 신작이다. 전쟁으로 인해 고아가 되어버린 다섯 남매의 쓸쓸한 여정을 다룬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에서 아이들은 더 이상 아이들이 아닌, 지칠 대로 지쳐버린 하나의 존재였다.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을 접한 관객들은 불편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는 진심이 담긴 영화임을 인정해야 했다.
바흐만 고바디는 ‘쿠르드족’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작품을 통해 이를 피력해왔다.
일반적으로 대중들에게 크게 어필했던 이란, 이라크 영화들과는 처음부터 노선을 달리한 바흐만 고바디는 아이들의 슬픔을 통해 진정성을 부여한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올리브 나무 사이로> 등을 연출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쿠드르 지역에서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를 찍을 당시, 바흐만 고바디는 자신의 단편을 들고 찾아가 조감독이 되기를 자청했으나 영화가 완성된 직후 바흐만 고바디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자신의 영화 스타일이 맞지 않음을 인정하고 자기만의 새로운 스타일을 찾는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희망과 밝음을 이야기 한다면 바흐만 고바디는 비극과 어두움을 통해 현실을 보다 직절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야기는 난민 촌에 팔 없는 소년이 여동생과 꼬마 아이를 데려 오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절대 웃지 않는 세 아이들은 분명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듯하다. 팔 없는 소년은 지뢰를 제거하다 두 팔을 잃게 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생계를 위해 다시금 지뢰를 찾는다. 혼자서는 밥도 먹지 못하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부모나 어떤 보호자도 없이 가족들을 지켜나간다. 난민 촌 최고의 우두머리 소년은 슬픈 눈을 한 소녀를 만나 금새 사랑에 빠지고, 소녀에게 잘 보이고픈 소년의 노력은 일반 영화들과 다름없이 깜찍하면서도 슬금슬금 웃을 유발시킨다. 하지만 이 같은 웃음은 결국 더욱 비참한 결과를 관객들에게 안기기 위한 전초전이었다. 아이들의 과거가 밝혀지고 그로 인한 상처들이 하나씩 수면위로 떠오를 때면, 관객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의 가슴아픔을 경험하게 된다.
아이들의 밝은 웃음과 씩씩함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 했던 관객들이 최후에 만나게 되는 것은 쓸쓸히 버려진 난민 촌의 폐허와, 탱크와 중화기를 몰고 들어오는 미군들의 모습뿐이다. 미군들을 쓸쓸하게 바라보는 아이들은 내리는 비 속에서 나른한 몸을 늘어트린 채 가만히 서 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없다. 열린 가능성으로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고자 했다면 애초에 포기하는 것이 좋다. 일반적인 영화들처럼 ‘아이들이 있는 한은 괜찮아’ 식의 결말이었다면 이렇게나 마음이 무겁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감독은 처음부터 희망을 이야기하는 듯하며 이야기를 끌어가지만, 결국엔 그 희망마저 잔인하게 밟히고 뭉개진 처참함으로 관객들의 가슴을 싸늘하게 얼려버린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분노할 수도, 슬퍼할 수도, 소리를 낼 수도 없다. 다만, 감독이 이야기하는 상황을 묵묵히 받아 들이는 방법 밖에 없다. 영화를 보고 나와 ‘그래도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으니 감사하지 않아?’라며 상대적으로 안도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배신이자 영화 속 어른들과 다름 없는 잔혹한 행위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에 슬퍼하고 아파하고 괴로워해야 하는, <거북이도 난다>는 그런 영화다. 아이들마저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곳. 그 곳이야 말로 현존하는 지옥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외톨이가 되었던 감독은 어린아이의 시선을 통해 세상을 능숙하게 풀어낸다. 그리고 그 능숙함 속에는 아이기 때문에 느껴야 하는 더 큰 공포와 좌절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바흐만 고바디 감독의 영화는 사유와 자연을 예찬하는 아랍영화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웃음 뒤에는 더 큰 눈물이 있고, 그 눈물을 감당하는 것은 너무나 힘들다. 어른들의 편리로 만들어낸 인위적인 ‘해피 엔딩’ 따위는 생각하지도 말아야 한다. 삶은 처음부터 전쟁터였고, 그 전쟁터를 만들어 낸 것은 바로 우리들 어른이기 때문이다.
"내 영화에서는 부시와 사담 후세인이 조연이며, 이라크 사람들과 거리의 아이들이 주인공이 된다. 독재와 파시스트 체제에서 희생되어가는 세계의 모든 순수한 어린이들에게 내 영화가 바쳐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 바흐만 고바디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