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꽃 기자]
<검은 사제들>(2015)을 선보인 다음 해, 부산국제영화제 야외무대에서 관객에게 수줍게 손을 흔들던 모습이 생생하다. 올해는 <기생충>으로 세계적인 규모의 칸영화제에 다녀왔고 작품이 황금종려상까지 받았으니 소감이 더욱 각별할 것 같다.
아직도 얼떨떨하다. 칸영화제 당시 사진을 보고 있으면 내가 정말 그곳에 있었던 게 맞나 싶다. 특히 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알고 나서는 ‘아부지’(송강호)가 엄청 보고 싶었다. 시상식 현장 분위기도 들어보고 싶고.(웃음)
당신도 그렇고 최우식도 그렇고, 송강호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그게 편해졌다. <사도>(2014)에서 송강호 선배와 함께 출연하긴 했지만 내 촬영이 3~4회차 정도로 짧아 직접 대사를 주고받는 장면은 없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내가 선배를 진짜 아빠처럼 대할 수 있도록 편하게 대해 주셨다. 무슨 짓을 해도 귀여워해 주셔서 고마웠다.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면 (송강호 말투를 흉내 내며) “에~ 뭘~ 또 감사해~” 하신다.(웃음)
혹시라도 진짜 아버지가 그런 호칭을 두고 서운해하시진 않던가.(웃음)
실제 아빠(웃음)는 칸영화제에서 송강호 선배가 상 받는 영상을 캡처해서는 나에게 “야, 너희 아부지가 짱이다!” 하고 연락해오실 정도다.(웃음) 나보다 송강호 선배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내가 영화에서 그의 딸로 나온다니까 영광이라며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검은 사제들> 이후 한동안 작품 활동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배우가 되겠다고 했을 때 아빠는 반대하셨다. 내가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검은 사제들> 이후에야 그 의미를 좀 알겠더라. 너무 많은 관심을 받는 게 두려웠다. 이런저런 부담이 커지면서 작품 제안이 끊겼다. 1년 정도는 소속사도 없이 쉬었던 것 같다. 일을 하지 않으면 조급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차라리 조금 쉬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
그러던 중 <기생충> 합류 제안을 받았겠다.
아는 의상 감독님을 통해 봉준호 감독이 나를 만나보고 싶어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고 답을 안 했다.(웃음) 두 번째 연락이 왔을 때 진짜라는 걸 알았다. 가족 이야기이고, 송강호 선배의 딸 역할일 거라고 했다. 다시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쯤이었는데, 그 후로 두 달 동안 아무런 연락이 없어서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웃음) 나중에 알고 보니 봉준호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쓰느라 정신없이 바빴다고 하시더라.
한동안 연기를 쉰 것이 도움이 되던가.
그랬다. 충분히 쉬었고 나를 다잡았다. 아마 그런 시간을 경험하지 않은 상태로 <기생충>을 만났다면 영화 속 ‘기정’ 같은 에너지를 보여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알게 모르게 지쳐 있었나 보다.
대학을 4년 만에 졸업한 건 동기 중에 나뿐일 것이다. 휴학 한 번 하지 않고 악착같이 달렸다. 졸업하던 해에는 한 달에 17번씩 오디션을 봤다. 수없이 떨어졌지만 딱 한 번만 기회를 잡는다면 정말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는데, 그러면서 많이 지친 것 같다. 가끔은 아무 생각도 안 하고 ‘멍때릴’ 줄도 알아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돌아온 현장은, 기대한 만큼 즐거웠나.
이렇게 즐기면서 연기해본 건 처음이다. 선배들이 왜 이렇게 신나 있느냐고 물어볼 정도였다.(웃음) ‘기정’의 대사가 마치 실제 내 말투처럼 입에 딱딱 붙는 느낌이었다. 봉준호 감독님도 용기를 많이 주셨다. 그저 나대로 연기하면 된다고 말이다. 워낙 머릿속에 모든 계획이 다 있는 분이신 만큼 내가 뭔가를 잘못한다고 하더라도 바로잡아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연기해보니 ‘기정’은 어떤 인물이던가.
그림 실력이나 손재주는 확실히 있지만 취업에 계속해서 실패한 까닭에 좋은 경력을 갖추지 못한 친구다. 당차고, 할 말은 다 하고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고민이 많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인 것 같다.
부잣집 사모님 ‘연교’(조여정)를 능청스럽게 속여버리는 장면이 ‘기정’의 역할이다.
여정 언니가 너무 잘 속아줘서 고마울 따름이다.(웃음)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열렬하게 믿어주니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내가 언니에게 “저와 함께 검은 상자를 열어 보시겠어요?” 하니 컷 소리가 난 뒤에 “어유~ 계집애~” 하면서 웃더라.(웃음)
송강호, 장혜진, 최우식과 함께 연기하는 가족 연기도 상당히 즐거웠다고 들었다.
공간의 힘이 컸던 것 같다. 가족들끼리 연기하는 장면은 주로 반지하에서 촬영했기 때문에 대부분 그 공간에서 수다를 떨었는데, 그 느낌이 굉장히 편안했다. 덕분에 배우들끼리 더 빨리 가까워진 것 같다.
영화에 등장하는 공간을 살펴보면 스태프의 노고가 느껴진다.(웃음)
모든 게 실제와 똑같았다. 한번은 반지하에 있는 소품용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정말 이상한 냉장고 냄새가 났다. 그것마저 감독님의 의도에 따라 미술 감독님이 준비한 거라고 들었다. 과거에는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분이 애 쓴다는 걸 몰랐다. 촬영 이후에도 배급, 홍보 같은 시스템이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아마 내 연기에 신경 쓰느라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이제 조금은 여유가 생겼나.
장률 감독님의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2018) 촬영장을 혼자 오가면서 이 직업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일인지 느꼈다.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기생충>까지 마무리한 지금은 시야가 좀 더 열린 것 같다. 이렇게 인터뷰하는 시간도 좋다.
앞으로의 작품 계획은.
박대민 감독님의 액션물 <특송>을 준비 중이다. 또다른 에너지를 가진 나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내년에 또 만나자. 그때도 나를 인터뷰 해줬으면...!(웃음)
사진 제공_ CJ엔터테인먼트
2019년 6월 10일 월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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